정빈의 생애와 신학

정빈의 생애와 신학

정병식 박사(서울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정빈)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는 김상준과 정빈, 혹은 정빈과 김상준의 이중주로 시작된다. 그런데 누구를 선두에 세울 것인가는 여전히 갑론을박(甲論乙駁) 중이다. 그동안 주로 김상준과 정빈의 순서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시작을 정리했지만, 정빈과 김상준의 순서도 성결교단의 역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결코 무리한 배열이 아닐 수 있다는 성결교회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김상준은 『사중교리』라는 저 서를 통해서 성결교단의 창립자로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유해 온 것이 사실이나, 최근 성결교회 역사학자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정빈에 대한 사료가 발굴되고 발표되면서, 성결 교단의 형성에 있어서 정빈의 위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물론, 정빈은 정교한 신학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 성결교회의 설립 과정에서 정빈이 보여준 교단을 향한 충성과 헌신은 그 누구의 어떤 신학저서보다도 값지고 빛이 난다. 정빈은 그 누구보다도 사중복음 정신에 투철했던 인물로서 성경 중심, 그리스도 중심, 선교적 교회 중심의 초교파적 안목으로 전도와 선교에 매진했던 진정한 사중복음 성결인이었다.

정빈은 모든 면에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황해도 해주에서 1870 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빈의 출생과 성장과 관련하여, 「달편지」는 원자료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스도 신문」은 정빈의 신앙 이력을 보도해 주고 있다. 「달편지」에 따르면, 정빈은 어려서부터 학문의 기초를 잘 다져왔으며, 비교적 어린 소년 시절부터 기독교 신앙에 입문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20대 초반에 연동교회에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지속했는데, 성경을 성실하게 공부했으며, 믿음도 더욱 깊어져 갔다. 「그리스도 신문」은 정빈의 ‘성경 읽기’가 매우 깊고 광범위하였다고 보 도하고 있다.

정빈이 일본으로 출국한 날짜와 입국한 날짜는 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동경성서학원에서 보낸 유학 생활은 「전보」와 레티 카우만(Lettie B. Cowman)의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전보」 (1905. 07)에 따르면, 일본에 김상준이 먼저 왔고, 이 후 정빈이 고명우의 소개로 도일했다고 한다. 카우만 부인의 기록은 더욱 흥미를 자아내고 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서 정빈은 결혼한 상태이며, 자녀들도 있었다는 것과 주로 한국 전통 복장을 착용했으며, 일본어를 단시일 내에 습득하여 신학 수업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빈이 동경성서학원에서 배운 것은 주로 성경 과목, 노방전도 실습, 그리고 사중복음이었다. 동경성서학원의 성경 과목을 통해서, 한국에서부터 배우고 익힌 성경 말씀을 보다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고, 노방전도를 통해서 복음의 실제적인 능력을 체험했으며,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라는 사중복음을 통해서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복음의 맥락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교리의 근간을 확립할 수 있었다.

정빈의 동경 유학 시절의 활동은 동경성서학원에서 제시한 신앙프로그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1895)에서 연원된 ‘제국청년회’(1898)가 1903년에 해산된 이후, 서북 방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된 ‘태극학회’(1905)가 발행하는 「태극학보」 편집진의 요청으로 〈面面 그리스도〉(「태극학보」 제4호)라는 글을 발표했다. 태극학회는 단순한 유학생 친목 모임을 넘어서 국민계 몽과 나라 사랑의 대의를 품고 학회지까지 발행했던 애국애족의 단체로, 이 학회와 교류를 했다는 것을 통해서 정빈의 나라 사랑과 민족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동경성서학원에서 2년여 동안 유학을 마치고 귀국 (1907. 5. 2.)한 정빈은 김상준과 함께 5월 30일에 염곡 (종로2가, 관철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열고, 본격적으로 사중복음을 한반도에 힘차게 선포했 다. 정빈은 교파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구령의 열정으로 직접 전도에 매진했다. 일본에서 배운 복음 전도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여, 정빈의 전도는 악대(樂隊)의 힘찬 행진과 옥외설교, 그리고 축호전도(逐戶傳道)로 이어졌다. 정빈은 새로운 교파를 창립한다거나 거창한 선교 및 자선사업을 새롭게 구상한다는 생각과는 확실한 거리두기를 하였다. 전도의 목적은 단 한 가지였다. 아직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전도관의 뜨거운 구령 열정에 힘입어서, 회개한 성도가 점증하기 시작했다. 1908년에는 복음전도관에 이장하가 함께함으로써 전도 열기가 뜨 웠고 그 결실은 막대했다. 1909년에 정빈은 서울 중심을 탈피하여 지방으로 전도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1911년에는 무교정 전도관 내에 성서학원을 개원했는데, 정빈은 무교정 전도관의 주임 교역자 직과 함께 이 성서학원에 최초의 한국인 교수로 임명되어 봉사했다. 이듬해 성서학원이 충정로로 이 전함에 따라서 정빈은 무교정 전도관 주임을 사임하고 성서학원 교수 사역에 전념했다.

불행하게도, 1914년에 정빈과 김상준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이 촉발되었다. 갈등의 정확한 이유는 베일에 가려졌지만, 길보른이 양자(兩者) 사이에 화해를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빈이 화해를 거부한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매우 심각한 갈 등이었음이 분명했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 성결교단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애석한 지점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빈은 성서 학원의 최초 한국인 교원이라는 직위를 포기하고 홀연히 북간도로 향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1917년에 정빈은 성결교회로 다시 복귀하여, 안성교회를 설립하여 교회 부흥을 주도했고, 1919년에는 인천교회로 파송 받아 3년 동안 모범적으로 교회를 섬겼다.

그러나 정빈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다가왔다. 인 천교회가 ‘복음전도관’이라는 명칭을 폐기하고 대신에 ‘성결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의하였을 때였다. 이에 정빈은 교회를 사임하고, 1921년 다시 북간도로 홀연히 떠났다. 북간도에서 정빈은 ‘동아기독교회’에 소속되어 열정적인 전도와 선교를 재개하여 나갔다. 정빈은 간도의 용정교회를 맡 아서 목회하였고, 종성동 성경학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로 봉사하기도 했다. 이후 정빈이 별세 하기까지 그의 삶과 사역은 베일에 가려졌다.

정빈은 체계적으로 자신의 신학 사유를 정리한 저서를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빈은 그의 복음 전도적 삶을 통해서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믿음의 본질을 분명하게 천명했고 삶으로 입증했다. 첫째로, 정빈은 성경의 사람이었다. 일본 유학 이전에 이미 성경을 깊이 읽고 묵상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일본의 동경성서학원에서 배웠던 성경 수업에 깊이 경도되었던 이유도 이미 한국에서부터 성경을 읽고 묵상했던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정빈이 동경성서학원에서 새롭게 눈을 뜬 ‘성경 읽기’의 계기와 모티브는 무엇일까? 바로 사중복음이었다. 정빈에게 있어서, ‘구원(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라는 사중 표제어는 성경 전체를 새롭게 조명해 주는 거룩한 빛이었다.

둘째로, 정빈의 신학적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는 「태극학보」에 게재된 〈面面그리스도〉라는 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빈은 당시의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거세어지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감지했다.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필요성을 더욱 역설했다. 출렁이는 역사의 파고 속에서 구속할 분은 바로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뜻이다. 더 불어, 정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강조했 다. 그리스도는 외적 자유가 아니라 참된 자유, 즉 내적 자유를 가져다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천명했다. 이처럼 정빈이 선포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과 자유의 원천이다.

셋째로, 정빈과 김상준의 갈등과 교단 탈퇴는 한국 성결교회사의 뼈아픈 지점이지만, 정빈이 동아기독교(침례교)로, 김상준이 감리교로 교단을 옮긴 것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초기 성결교회의 신학적 경향성은 매우 분명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초기 성결교회가 일정 부분 범침례교적(汎浸禮敎的)인 ‘선교적 교회론’의 전통과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성결신학 전통을 모두 품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는 정빈과 김상준이 신학 수업을 받았 던 일본의 동양선교회(OMS)와 동경성서학원이 미 국의 만국성결교회(International Holiness Union & Prayer League, 1897)의 핵심 지도자인 마틴 냅(Martin Knapp)의 감리교 전통과 셋 리스(Seth Rees)의 퀘이커 전통이 빗어낸 ‘웨슬리안 사중복음’을 핵심적으로 가르쳤기에 발생한 당연한 결과라고 사료된다.

김상준이 『사중교리』라는 ‘웨슬리안 사중복음’의 교과서를 집필함으로써 웨슬리 신학의 후예로서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증명해 주었다면, 정빈은 ‘웨슬리안 사중복음’ 속에서 제도적 교회 설립보다는 축호전도와 세계 선교로 경도(傾倒)된 전도 중심의 교회론적 강조와 교파를 초월한 성결 공동체 설립의 중요성을 깨닫고 홀연히 북간도에 가서 선교사와 전도자로 자신의 일생을 헌신함으로써 사중복음 성결인의 정체성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면, 정빈을 그 시대의 유력한 교파인 감리교회도 아니고 장로교회도 아닌 동아기독교(침례교)라는 조금은 낯선 교단으로 유도한 신학적 배경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그것은 교회론적 차이라고 생각한다. 만국성결교회의 비전을 공유한 일본의 동경성서학원과 초기 전도관의 인사들이 가슴에 품었던 교회론은 제도교회를 지양(止揚)하고 선교단체를 지향(志向)하는, 순수한 성도의 공동체와 이 공동체를 더 역동적으로 만드는 사중복음의 직접 전도와 세계선교라는 거시적 비전이었을 것이다. 이는 만국성결교회가 추구했던 교회 비전과 일치하며, 셋 리스가 추구했던 교회론적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정빈은 자신이 담임했던 인천교회가 선교단체의 성격을 띤 ‘복음 전도관’에서 ‘성결교회’라는 교파 교회로 새롭게 변모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고민했을 것이고, 정빈이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는 ‘복음전도관’의 교회론적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동아 기독교(침례교)를 대안으로 삼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기 ‘장·감·성’으로 대변되던 한국기독교에서 성결교회의 입지가 약화된 현실은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그 변곡점(變曲點) 언저리에, 성결교단에서 어떠한 변 화가 발생했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매우 절실하다. 특히, 목회와 신학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겸허하게 복기(復棋)해야 한다. 그것은 사중 복음이 표방하는 다양성과 초교파성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악기로 오케스트라(orchestra)를 만들려 하지 않고, 가장 우월하고 영향력 있는 악기의 독주회에 착념(着念)했던 것이 쇠퇴 원인 중의 하나는 아닐까 하고 추정해 본다. 초창기 성결교회의 사중복음은 어느 유력한 신학자의 솔로(solo) 연주가 아니었다. 신학적 문법과 결이 맞지 않는 여러 신학적 흐름을 성결신학과 세계 선교라는 지상명령으로 녹여서 오순절 초교파 성령 신학, 하나님 중심의 초대교회 말씀 신학, 영혼 구원에 목숨 건 그리스도 중심의 전도 신학, 그리고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 완전 성화의 성결신학을 모두 탄력적으로 포용했던 ‘웨슬리안 사중복음’이었다. 정빈의 존재는 이처럼 다양한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수용력, 전도와 선교 지향적 교회 이해, 그리고 초교파적 세계선교 비전이라는 신학적 맥박이 초기 성결교회 역사 속에 힘차게 고동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소중한 단초(端初)가 된다. 그래서 정빈의 존재감이 희미해져 버린 현대 성결교회 역사의 한복판에서, 그립고 아쉬운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본다. 아! 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