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현 시대의 종교적 상황

 

 

(한스 큉, 이신건, 이응봉, 박영식 옮김, 시와진실, 2015년)

이신건


저술 의도

 

이 책은 보쉬 기념재담과 다임러 벤츠 기금이 지원하는 “종교 평화가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큉이 기획한 3대 세계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관한 저술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온 작품이다. 이 책의 서문 “이 책은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아 있는 유대교에 대한 분석이 없이는 현 시대의 종교적 상황에 대한 분석도 없다! 새 천년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와 있고 온 세계가 새 천년에 관해 온갖 추측을 늘어놓고 있는 이 시점에 유대교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새 천년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삼대 예언자적 종교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유대교는 참으로 우리 시대의 모든 종교적 문제를 하나의 집광 렌즈처럼 반영하고 있다. 비록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는 적지만, 그래도 유대교는 정신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하나의 세계종교이다. 그러므로 근동에서 생겨난 세 예언자적 종교에 먼저 초점을 맞추려는 우리의 전체 구상이 유대교와 함께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5)

여기서 큉은 다음과 같은 다음과 같은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기독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든, 모든 세계종교는 개인과 민족과 문명을 뛰어넘는 살아 있는 체계이다. 이 체계는 천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다양하고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해 왔다. 만약 우리의 연구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실에 부합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천년의 역사의 정신적 능력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체계적 진단이 필요하다. 분석된 현재로부터 미래에 주어질 다양한 선택에 대한 전망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천적-공동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제1부: “여전히 현존하는 과거”)를 알아야만, 우리가 지금 어떤 지점에 서 있는지(제2부: “현재의 도전”)를 이해할 수 있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제3부: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5) 


 

제1부 여전히 현존하는 과거

 

1장 기원

여기서 큉은 먼저 130억을 헤아리는 세계사를 간략하게 고찰한 다음에 3대 세계종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유대교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아브라함에게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근본적인 것은 무조건 신뢰하는 신앙이다. 이 신앙 때문에 아브라함은 “의롭다고 여겨졌다.” 아브라함은 이런 의미에서 믿는 사람의 원형과 모범이고, 이런 신앙에 근거하여 가장 어려운 시험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며, 그래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는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셈족 사람들에게서 기원한 삼대 종교 모두의 공통적인 원조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 종교를 아브라함 종교라고 부른다.”(39) 

 여기서 큉은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에 모든 세 종교의 원초적인 정체성이 걸려 있다. 아브라함은 이상적인 출발점은 아니지만, 하나의 매우 현실적인 출발점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에는 ‘삼중대화’가 필요하다.(40-51) 

큉에 따르면 유대교는 하나의 수수께끼와 같다. 유대인도 스스로 가장 큰 수수께끼로 여기는 유대교란 무엇인가? 하나의 국가이지만, 결코 국가가 아니다! 하나의 민족이지만, 결코 민족이 아니다! 하나의 언어 공동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의 종교 공동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분명한 점은 유대교가 3천 년이 넘은 역사 속에서 전무후무하고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생존 능력을 입증한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52-56)

 

2장 중심

여기서 큉은 이제 유대교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중심요소는 출애굽(민족과 선택)과 시나이(언약과 율법)와 가나안(땅과 약속)이고, 중심인물은 모세이다. 여기서 큉은 모세의 종교 약력을 간단히 설명하며,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모세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유대교의 중심적인 신앙 내용은 야웨 하나님과 하나의 이스라엘 백성이다. “야웨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고,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다!” 이 언약 조항은 구약성서의 중심이다. 히브리 성서, 테나크, 구약성서의 모든 이른바 타원형의 증언은 두 초점(야웨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유대인의 토대는 초기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독창성, 수백 년의 긴 역사 속에서도 유지하는 연속성,  언어와 인종, 문화와 종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정체성이다.(76-103)

 

3장 역사

I. 국가 이전 시대의 부족 패러다임 : 여기서 큉은 이스라엘의 땅 정착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비록 가설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학자들은 땅 정착의 세 가지 역사적 재구성 모델을 생각한다. 그것은 정복 모델(물결처럼 이주함)과 이주 모델(점진적으로 침투함)과 계층변화 모델(팔레스타인 내부의 혁명이나 변화)이다. 그러나 큉은 이 모든 모델을 통합적 견해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그렇다면 초기 단계부터 유대교의 항구적 중심과 영속적 기초가 되었던 항구적인 중심은 무엇인가? 여기서도 단지 “한 하나님, 하나의 왕, 하나의 땅”이라는 보편적 구조만이 아니라 “한 하나님, 한 백성, 한 땅”이라는 구조도 나타난다.(111) “국가 이전 시대에 이스라엘의 대가족, 씨족, 마을과 부족은 점점 더 분명히 서로 결합되었을 것이며, 자신을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통일체로 이해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결코 획일적으로 조직된 통일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의 느슨한 연맹이었다. ... 그 당시에 땅은 존재했지만, 확고한 경계선과 국가적 일치도 없었고, 따라서 최고의 군주도 없었다.”(112-115) 

II. 왕조 시대의 왕국 패러다임 :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로부터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던 시기에는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먼저 초기 철기 시대에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일어난 발전(인구 증가, 정착, 경제, 수공업과 군사 기술의 발전, 그리고 사회구조의 모든 변화)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음과 같은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영토에서 흩어져 살던 대가족, 씨족, 부족이 점점 더 정착하고 결속하고 자신의 공동 운명을 깨달을수록 사회적-정치적 상황 때문에 내부를 향한 지속적인 역할 조정과 외부를 향한 영속적인 공동적 방어자세도 점점 더 절박해졌다. 부족사회는 민족-국가로 변해야 했고, 그 결과로서 견고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만들어야 했다.”(118)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 온 자는 사울이었지만, 완전한 패러다임 전환은 다윗에 의해 성취되었다. 다윗 왕국은 많은 유대인에게 오늘날까지 위대한 이상으로 남아 있고, 온 이스라엘에게 예언자적인 전망과 희망을 보여주는 인물로 남게 되었다. 여기서 큉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비친 다양한 다윗의 모습을 소개한다. 그렇지만 왕조 시대는 단지 대략 4백 년 동안 지속되었고, 솔로몬 왕국은 분열되었으며,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았다.(121-156)

III. 포로기 이후 유대교의 신정(神政) 패러다임 : 바빌론 포로생활은 거의 50년(586-538) 동안 지속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고국과 분산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오랜 전통을 순수하게 보존해 왔다. 바빌론에서 종교적 율법 학교와 함께 율법 신앙의 시작이 전개되었다. 할례, 안식일 계명, 정결 규정과 식사 규정, 기념축제가 바로 이제 야웨의 백성에 속해 있다는 표지로서 특히 중요해졌다. 일상생활의 모든 사례를 위해 토라를 해석한 서기관과 율법 교사의 신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파국 속에서 포로들은 두 명의 포로기 대(大) 예언자 에스겔과 “제2 이사야”를 통해 신앙적으로 강해졌고, 새로운 희망을 위한 용기를 얻었다.(157-162)

주전 520년에 “두 번째 성전”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사제 직분이 새로운 비중을 얻게 되었다. 역사는 이미 포로기에 신명기 정신의 기초가 되었던 율법 집중을 향해 흘러갔다. 그것은 율법 준수를 통해 은총을 획득하려는 것이었다. 450년 무렵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결정적인 완성이 이루어졌다. 근본적인 틀을 형성한 것은 한편으로는 배타적인 종교적 중심지가 된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직 계급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율법이 된 거룩한 문서의 수집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공동체의 패러다임이다.(162-171)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에 시작된 히브리 성서의 정경화 과정이 이제 점차로 종결을 맞게 되었다. 희생제의 예배와 나란히 이제는 말씀 예배가 점점 더 강하게 등장했다. 문서의 표준화와 함께 제의의 표준화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소멸했고, 예언자의 자리에 지혜의 교사들(현자들)이 들어섰다. 주전 2세기에 헬레니즘 세계 문화가 팔레스타인에도 강력한 영향을 떨쳤다. 유대인의 전통 문화와 헬라 문화 간의 갈등이 커지자, 마카비 혁명이 일어났다. 종교적으로 관용적이었던 로마의 통치 아래 신정 패러다임은 더욱 더 견고해졌고, 일종의 교회 국가가 되었다. 신정 패러다임의 변두리에서 초기의 종말론적 희망을 다시 받아들인 묵시 문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신정 체제는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172-199)

IV. 중세 랍비-회당 패러다임 : 신정국가 이스라엘과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 간의 연속성을 만든 자들은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성전이 파괴된 후에 사제의 유산을 이어받고 유대교의 정신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최상의 조건을 만들었다. 온건한 바리새인 집단은 표준적이고 규범적인 유대교 집단이 되었다. 이제부터 토라가 제단의 자리를 차지했고, 토라 공부가 성전 제의를 대신했다. 랍비가 사제 계급을 계승했다. 집회와 기도와 교제를 위한 지역 처소가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신했다. 토라에 대한 점점 늘어나고 복잡해지는 해석 과정(미쉬나)은 500년 이상 계속되었고, 둘째 단계(탈무드)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고 종결되었다. “정통적” 유대교의 일차적 관심은 “정통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통실천”에 있다. 그러나 이제 토라, 미쉬나, 탈무드에 포함된 수많은 규정은 영원히 지속되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안식일 규정, 식사 규정, 정결 규정, 기도와 예배 규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무조건 준수되어야 한다.(201-215) 

 이 기간 동안 유대인은 기독교인으로부터 점점 오해와 박해를 받기 시작했고, 그래서 여러 나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논쟁이 일어났고, 유대인에 대한 편견도 더 심해졌다. 1348-50년에는 가장 혹독한 유대인 박해가 일어났다.15/16세기에 유대인은 잇따라 추방되었다. 유대인의 주요 공동체는 겨우 프랑크푸르트, 보름스, 빈, 프라하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이로써 북유럽의 유대교는 필연적으로 문화적인 몰락을 겪었고, 지금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은 동쪽으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16/17세기에는 유대교의 경제적, 정신적 중심이 폴란드로 넘어갔다. 거기서 유대인은 도시 상업과 원거리 무역의 개척자로서 환영을 받았고, 무역과 기업을 운영하는 중산층으로서 안정과 특권을 누렸으며, 오랫동안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었다.(216-262)

 V. 근대의 동화(同化) 패러다임 : 근대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새로운 신앙과 함께 낙관주의적 전조를 띠면서 시작되었다. 이성은 모든 종교적 권위에 맞서 진리의 최고 심판관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는 르네상스처럼 과거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했다. 인간의 이성과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자연(자연법)에 대한 신앙은 더 나은 미래와 진보에 대한 신앙으로 바뀌었다.(285) 스피노자는 근대적인 하나님 이해를 대변했고,  최초의 근대적인 유대인은 모세스 멘델스존이었다.(264-300)

현대적 학문과 문화와 민주주의의 도전 때문에 유대교도 이제 오랜 정체 후에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겪게 되었다. 중세기에는 유대인이 분리와 자율 속에서 살았다면, 이제 현대의 민족 국가 안에서는 개인과 “예배 공동체”가 법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통합되었다. 공동체가 새로운 질서를 지니게 되었고, 할라카의 법이 국가의 법에 의해 부분적으로 대체되었다. 지금까지는 유대인이 랍비로부터 탈무드를 배웠다면, 이제 그들은 현대적인 일반 교육을 받게 되었고, 공립학교에서 세속적이고 현실적이고 직업적인 교육과 훈련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랍비가 법률 전문가와 재판관으로 활동했다면, 이제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랍비가 성서, 탈무드, 역사, 철학으로부터 유대교의 가르침을 해설했고, 그래서 그들은 설교자, 목양자, 예전가, 교육자로서 활동했다. 지금까지는 예배가 히브리어로, 그리고 이해하기 어렵고 형식적이고 제의적으로 드려졌다면, 이제 개혁된 유대교 예배는 설교와 문화적 요소(오르간이 포함된 음악)를 도입하는 가운데서 민중의 언어로 드려졌다. 모자 착용의 의무가 폐지되었고, 성가대와 모임에서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는 전통도 폐지되었다. 지금까지는 유대인이 중세기의 모든 관습으로 인해 제한되고 고립된 게토 생활을 했다면, 이제 유대인의 모든 생활 형태는 의복에서 식사 습관에 이르기까지 현대화되었다.(307-312) 


제2부 현재의 도전(생략)


제3부 미래의 가능성(생략)



평가

지금까지 유대교에 관한 많은 연구서적들이 출판되었지만, 질적, 양적으로 다른 유대교 연구서적을 단숨에 압도할 만큼 야심적인 대작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감탄과 감사를 넘어서 찬탄과 칭송을 받을 만하다. 지금까지 다소 산만하거나 방만한 유대교 연구서적에 비해 이 책은 유대교의 본질과 역사를 “패러다임” 이론으로 체계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책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책은 단지 유대교가 기독교의 관점에서 자신을 비판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유대교의 관점에서 자신을 비판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더욱이 이 책은 자신을 갱신하고 미래적 대안을 모색하려는 기독교는 이로부터 유익한 모범과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술은 단지 유대교에 관한 이론적인 시도일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의 오랜 갈등, 특히 팔레스타인 땅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실천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그의 정직하고 중립적인 해석과 지혜롭고 합리적인 대안이 매우 돋보인다.

그러나 큉이 기독교인으로서 유대교를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리고 얼마나 올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는지는 계속 논의되어야 한다. 그의 해석과 대안을 무조건 깎아내려서도 안 되겠지만, 무조건 두둔해서도 안 될 것이다. 혹시 그가 누락하거나 간과할 내용은 없는지, 그리고 그가 현실을 너무 미화하거나 폄하하지는 않았는지도 냉철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