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에 대한 진중한 고찰

 

부제: 칼빈주의자들처럼 성경이 인정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굳이 부인해야 하나님께 더 영광이 돌아가는가?

 

존 웨슬리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만약 사람에게 어떤 자유 의지라도 있다면, 인간의 구원과 관련해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하거나 거부할 수도 있는 능력이 주어진 자유로운 존재로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보다는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불가항력적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훨씬 더 영광이 돌아간다.” …

당신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 편에서의 협력 없이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신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당신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약 인간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기’(빌 2:12) 위해 ‘하나님과 함께 일하게’(고후 6:1) 된다면, 하나님은 사람의 참여 없이는 전체 일을 다 하실 수 없다는 것이 된다.”

그것은 참으로 옳고 확실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하나님만 모든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지 못하는가? 왜 하나님만 모든 영광을 받으시는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능력 그 자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당신의 경험이 이것을 가르쳐주지 않는가? 당신은 어떤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하게 하거나 순복하게 하는 능력을 자주 느껴보지 않았는가? 그럴 때는 당신이 은혜에 순복해 “하나님과 함께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능했음을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성경과 경험 모두는 당신들을 반박하고 있다. 모든 공정한 탐구자는 성경과 경험 모두를 통해, 비록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을 자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만이 구원의 모든 영광을 취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린다”고 말한다면, 나는 우리도 그렇다고 답한다. 만일 당신이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이 전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홀로 모든 일을 하신다고 단언한다”고 말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역시 그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의롭게 하시고, 성화시키시고, 영화롭게 하는 것, 이 세가지 즉 구원 전체는 홀로 하나님만이 하시는 사역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은 단지 거역만 할 수 있을 뿐이며 결코 “하나님과 함께 일하지는” 못한다는 주장,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사역에서 인간은 전혀 일할 수 없도록 배제하신다는 의미에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 전체를 이루신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감히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철저히 성경과 배치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았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빌 2:12)고 말씀하며, 또한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 영혼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고후 6:1)가 되어야 함을 명백히 말씀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이를 반대하기 위해 다른 표현을 사용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자유 대신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숙명적 존재로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함으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

아, 주님께서 친히 당신들에게 답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그가 일어나 자신의 뜻을 말씀하시기를! … 사람을 불가항력적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어떻게 그들을 은혜에 협력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구원하시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될 수 있는가?

당신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매우 혼동된 비성경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로 당신들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은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영광스런 본질과 속성이며, 영원 전부터 존재한 것이다. 이 영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며 더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자주 하나님의 영광을 그것과 조금 다른 의미로 말씀하는데, 그런 경우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과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과 영광스러운 속성,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공의와 자비와 진리가 우리 앞에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는 것은 오직 이 후자의 의미로 제한된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이 증명해야 할 요점은 이것이다. “과연 인간을 불가항력적인 방법으로 구원하는 것이, 인간을 하나님의 은혜에 동조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존재로서 구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 특히 그의 공의와 자비와 진리를 더 현저히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들은 내가 구원이 사람을 단지 기계로 취급해 상급이나 형벌을 받을 가치조차 없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불가항력적 은총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가항력적 은총에 의해 이루어지는지 그것 하나만 문제삼을 정도로 어리석다고는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불가항력적 은총에 의한 구원이 가항력적 은총에 의한 구원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드러내느냐 덜 드러내느냐만을 다루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당신의 주장 전체를 다룰 것이다. 즉 택자에게만 불가항력적 은총을 주신다는 당신들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다른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지 않는다는 주장이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다는 주장은 다른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유기하기 원하신다는 주장임을 다룰 것이다.

우선 이 점을 분명히 하자. 내 주장에 모순이 있거나 내가 스스로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당신들은 내가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회복된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허용하라. 당신들의 주장에 모순이 있거나 당신들이 스스로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나는 당신들과 무조건적 선택을 주장하는 모든 이들이 무조건적 유기를 주장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그 다음은 한편에는 자유의지를 놓고, 다른 한편에는 무조건적 유기를 놓고 생각해 보자. 당신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전자의 도식이 더 옹호할 만한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유기하신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후자의 도식이 더 옹호할 만한가? 또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을 바르게 드러내며,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와 자비를 바르게 그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는지 생각해 보라.

첫째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이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진다면, 즉 하나님께서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요 1:9)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어” 우리로 택할 수 있게 하셨다면(신 30:19), 하나님의 많은 지혜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경륜을 통해 얼마나 영광스럽게 드러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강제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는 않으신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나무나 돌처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즉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이성 및 선한 것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이성적 피조물로서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의 경륜 전체를 이러한 자신의 결정과 계획, 즉 “그의 뜻의 결정”(the counsel of his own will, 엡 1:11)과 얼마나 조화롭게 이루어가시는가! 그가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가시는 첫 단계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반적 지식으로 이성을 계몽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토대로 하나님은 사람이 그 빛을 거스려 행할 때에는 은밀히 많은 책망을 하신다. 이 땅에 사는 사람 중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많은 내적인 죄의 자각을 자주 느끼며 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에 작용하셔서 그들을 이끌고 설득해 그들로 빛 가운데 걷게 하신다. 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선한 욕망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러한 선과 악에 대한 이해와 죄책, 선한 욕망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들까지도 포함해 모든 사람의 자녀들을 계속 인도하신다. 그러나 사람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존재로 두시면서도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속에서 어떤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는가? 참으로 그의 방법 하나 하나가 모두 사람을 사람으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즉 삶과 죽음을 그들 앞에 두시되 그들을 강제하시지 않고 설득하심으로 그들로 삶을 선택하게 하시려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가! 이러한 하나님의 큰 목적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시 119:105)이 되는 온전한 규칙을 먼저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규칙을 율법의 형태로 주신 후, 순종하는 자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상급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가장 엄격한 형벌로 벌하실 것이라 말씀하심으로 가장 강력한 어조로 율법의 유효성을 승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히 드러내시면서 모든 방법을 다해 그들의 영혼에 다가가신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사람의 이성에 작용해 그들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때로는 사람의 감정에 작용해 그들의 배은망덕함을 부드럽게 책망하기도 하시며, 심지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일치하는 일이라도 강제로는 행하지는 않으시면서 자신을 낮추시어 “내가 이미 행한 것 외에 너희를 해줄 것이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느냐?”라고 묻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때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5)라며 위협을 가하기도 하시고, 때로 “너희의 죄와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10:17)라며 약속하기도 하신다.

사람이 참으로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얼마나 분명히 드러나는가! 그러나 만약 모든 사람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변경 불가능하게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도록 결정되어 있다면,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란 도대체 어떤 지혜인가?

만약 사람에게 자유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치 모든 면에서 사람이 자유로운 것처럼 그들을 대하셨다면, 그런 지혜란 도대체 어떤 지혜인가? 하나님의 사람의 구원을 위해 행하시는 이 모든 경륜 전체가 무조건적으로 유기된 사람에게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약속과 경고, 권고와 책망이 지옥의 불쏘시개에 불과한 사람들에게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모든 것이 참으로 공허한 웃음거리와 짜증거리, 소리의 나열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다른 것은 제외하고라도 이런 절차에서 도대체 무슨 지혜가 드러난단 말인가! 이 모든 체계가 도대체 무슨 목적에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만약 당신이 “그의 저주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면, 아아 그런 저주가 창세 전부터 내려진 것을 확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에 필요한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여, 이 모든 설명 중 어떤 것이 더 하나님의 지혜의 영광을 드러내는지 판단해 보라.

다음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만약 사람이 선이나 악을 택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하시는 적절한 대상이 되어,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거나 정죄하시고, 또 상을 베푸시거나 벌을 내리시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공의를 실행하시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단지 기계와 같이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없는 존재는 용서나 정죄를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 돌이 땅에 떨어진다고 해서 벌하는 것은 공의가 아니다. 당신들의 주장대로 사람이 스스로 선이나 악을 택할 수 없다면, 사람이 죄에 빠진다는 이유로 벌하는 것 역시 공의가 아니다. 당신들의 생각처럼 만약 사람이 이런 정죄를 받도록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왜 죄를 범하는가? 당신들은 “그는 죄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 사람이 왜 죄를 멈출 수 없는가? 당신들은 “그가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들은 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가? 당신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의해 그에게 영원히 구원의 은혜를 주지 않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그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성 아래에 있는가? 당신들은 “그렇다. 마치 돌이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과도 같다. 돌이 스스로 공중에 떠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은 스스로 죄를 멈출 수 있는 어떤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그들이 결코 행할 능력이 없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가 결코 피할 능력이 없는 죄를 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는 선고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당신은 “그렇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들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당신들은 새로운 하나님을 찾아냈거나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만들어낸 그 존재는 그리스도인이 믿어온 하나님은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일에서 공의로우시다. 그는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두지 않으신다. 그는 주신 대로 요구하신다. 적게 주신 곳에서는 적게 요구하신다.

그의 공의가 영광스러운 것은 그가 “각 사람이 행한 그대로 갚아주시기”(마 16:27) 때문이다. 이점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이 사람과 천사에게 분명히 드러난다. 즉 그는 각 사람에게 주신 것을 받으시고, 주지 않으신 것은 받지 않으신다. 이것이 현세에서든 영원에서든 결코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결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충분히 인정해 모든 일에서 그것이 드러나게 한다면, 무조건적 유기를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그저 하나님의 어두운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당신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에게는 실현되지만 그 이외의 나머지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마치 그런 공의가 그의 사랑을 영광스럽게 드러내는 것처럼 말한다. 99%의 유기된 자들은 아무런 자비도 없이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택자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소수의 사람에게만 자비를 베푸시고, 다른 많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게 만드신단 말인가? 여기에 당신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신다.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나는 묻고 싶다. 숨 한 번만 내쉬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떤 사람이 수많은 사람 중 100분의 1 이상은 구해주기를 거절한 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사람에 대해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 같은 처사를 하나님이 행했다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할 수 있는가? 당신들은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라고 하신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다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이상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가!

당신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선택할 수 있게 하신 후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사람만 실제로 구원하시는 것보다, 택자를 불가항력적으로 구원하시는 데서 하나님의 자비는 더 크게 드러난다”라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으로 당신들의 잘못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모면할 수 있는가? 할 수만 있다면 당신들의 주장을 입증해 보라. 당신들의 주장에 대해 어떤 성경적 증거를 댈 수 있겠는가? 나는 공정한 태도를 지닌 모든 사람에게 호소한다. 그와 반대되는 주장이 명백한 진리 아닌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소수의 사람을 불가항력적으로 구원하시고 그 외의 많은 사람은 아무런 도움도, 소망도 없이 영원히 멸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본성을 파괴하면서 구원을 얻도록 강제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제공하신 후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실제로 구원하시고, 아직 받아 들이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 무한한 지혜와 전능하신 능력, 한없는 사랑으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를 훨씬 영광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라. 나는 공정한 태도를 지닌 모든 사람과 당신들에게 호소한다. 만약 편견으로 눈 멀지 않았다면, 이 두 가지 설명 중 어떤 것이 가장 유익한 진리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하고 있는지 판단해 보라.

 

출처: 한국웨슬리학회 편역, 『존 웨슬리 논문집 II』 (과천: 한국웨슬리학회, 2019), 450-457.
(장기영 박사가 원문을 참고해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틀에서 표현 일부를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