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2016년 4월 15일-6월 15일)

 

프랑스(스트라스부르)

  (2016년 4월 21일)

 독일에 와서 가장 먼저 가본 곳은 비교적 가까운 스트라스부르(크)였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작은 마을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수차례 뺏고 뺏기던 마을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프랑스에 완전히 귀속된 마을이다. 이곳의 성당은 괴테가 높이 찬사한 미적인 수준을 자랑하며, 안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전시되어 있다.

        

 

영국(런던/옥스포드)

  (2016년 4월 24일 - 5월 3일)

 두 번째 여행은 영국 런던과 옥스포드 여행이었다. 런던 아름다운 교회 김은혁 목사의 초대를 받아 10일 간 머물며 숙식과 안내의 도움을 받았고, 설교도 했다. 런던 행복한 교회 김석천 목사 내외도 반갑게 만나 설교하고 대화를 나누었고,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
  영국에 정착한 제자 박종범, 백장현 목사도 뜻밖에 반갑게 만나 식사초대를 받았고, 한국에서 잠시 건너온 황우승 목사 부부도 만나 잠시 동행했다. 김석천 목사의 차를 타고 옥스포드에 가서 거기서 공부를 마치고 목회하는 전계상 목사를 만나 식사초대와 안내를 받았다.
  해외에 나오니, 동문과 제자, 지인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모두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한다!

 

   

  

      

   

 

        

 

 

스위스(인터라켄, 융 프라우)

  (2016년 5월 5일 - 5월 6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스위스에 가 보지 않고는 유럽 여행을 말할 수 없으리라! 스위스 동남부에 위치한 작은 라인 폭포를 본 후에 여러 호수를 끼고 운전한 끝에 저녁이 되어 브리엔츠 호숫가 바로 앞에 자리한 유스호스텔에 하루를 묵고, 여러 호수와 폭포와 알프스 설산, 아름다운 집과 교회당을 둘러 보았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에 꿈에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찬송하며 감격에 겨워 울었다. 특히 브리엔제 호숫가에 자리한 이젤발트 , 놀라운 폭포를 지닌 라우트브루넨, 산속의 마을 그린델발트,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한 두 사이데엑 언덕은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지상의 별세였다.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를 한꺼번에 쳐다 보았다.

 

 

 

 독일(남부) / 체코(프라하)

  (2015년 6월 13일 - 6월 14일)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역시 불행한 루드비히 2세 왕이 프랑스 베르샤유 궁전을 본따 더 화려하게 지으려다 다 짓지 못한, 그러나 지상에서 가장 화려할 것처럼 보인 킴제 성을 본 후에 다음날 체코 프라하로 갔다. 이원희 목사의 친절한 영접과 안내를 받아 빠른 시간에 명소를 둘러 보았다.
   옥의 티라면, 동행한 연로한 여자 권사님이 가방을 10분 동안 뒤로 맨 사이에 지갑을 털린 일이다. 그날은 마침 성령강림절 연휴여서 사람들이 부딪힐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유럽 여행, 특히 프라하와 로마와 같은 도시에서 뒤로 매는 가방은 도둑의 재산임을 명심하라!

 

 

  

 

독일(루터 유적지)

  (2016년 5월 17일 - 5월 20일)

 독일 남부 한인교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루터 종교개혁지 탐방여행에 참여하여, 루터가 나고 활동하고 죽은 곳 에어푸르트, 바르트부르크(성), 아이슬레벤, 아이스나하, 비텐베르크 등을 세 번째 둘러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내년에 맞이하는 500주년 준비 때문에 올해도 비텐베르크 교회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행히 더 많은 박물관과 기념 자료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루터의 잘못(유대인 박해, 장애인 차별)도 명시되어 있었다.

  

  

 

  

  

 

독일(북부)

(2016년 5월 20일 - 5월 24일)

 루터 종교개혁지 탐방여행을 끝내고 곧바로 보훔으로 가서, 제자 이주훈과 정초아의 환영과 접대와 안내를 받았다. 그 다음날 본과 쾰른을 구경하고, 저녁에 인근에서 공부하고 목회하는 제자와 후배를 집합시켰다. 조재석 목사의 아내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먹고 밤이 늦도록 대화했다.
  주일에는 이화정 목사가 섬기는 도르트문트 교회에서 설교하고, 장로님 부부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보훔은 낮은 지대여서 산과 강이 전혀 없고 전쟁 중에 건물이 완파되어 온통 현대식 건물 뿐이었다. 독일 남부와는 완전히 다른 멋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좀 안스러웠지만, 물가와 집세는 훨씬 싸기에 가난한 유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독일(보덴제)

(2016년 5월 26일)

돈과 체력이 떨어져 며칠 휴식한 후에 독일 남부의 큰 호수 보덴제에 다녀왔다. 보덴제 입구에 세워진 십자가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루터의 나라답게 곳곳마다 십자가를 볼 수 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모처럼 쌍무지개를 보았다. 

 

 

 

독일(튀빙엔)

(2016년 6월 1일)

 독일에 유학온 지 29년만에 아내와 함께 튀빙엔 뒷골목을 손잡고 거닐며 옛날을 추억했다. 그때는 학업에 대한 부담감과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그리고 둘째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여유있게 시내를 돌아다니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튀빙엔 분위기를 다시 한번 느껴보려고 이곳저곳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옛날에 보지 못한 작은 개울 옆의 노천까페가 정겹다. 1895년부터 1899년까지 헤세가 점원으로 일했다는 서점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독일사람이 책을 매우 사랑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주말이 아닌데도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왔다. 한 노인이 거리에서 아코디언을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거리 어귀에 앉아서 아코디언을 연주할지도 모른다. 구걸이 아니라 여흥을 위한 목적으로 아마 그럴 수도 있겠다!

   도시 중심에 자리잡은 공원에서 대낮에 놀이하거나 편히 쉬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넥카 강변 노천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있는데, 청소년 밴드가 분위기를 돋우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년기에 배우고 싶어하는 악기를 어릴 적에 이미 능숙하게 악기를 다루는 독일 아이들이 부럽다.

 

 

 

  

 

(2016년 6월 9일)

귀국을 한 주간 앞두고 튀빙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최재화, 허근명 부부와 함께 고별 식사를 한 후에 기념 사진을 찍었다. 서울신대 출신으로서 튀빙엔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를 포함하여 4명(유석성, 조병하, 이희용)이었는데, 튀빙엔 대학 동문이 조금 늘어나게 되었으니 기쁘다.
  허근명 부부가 정성껏 요리한 점심 밥을 맛있게 먹고, 유학 시절에 살던 기숙사를 아내와 함께 29년만에 다시 찾아 기념 사진을 찍었다. 기숙사 건물의 외관은 조금 바뀌었지만, 구조는 옛날 그대로였다. 이 방 저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서 함께 살았던 사람을 일일이 떠올려 보았다. 김지철, 위형윤, 박헌욱, 오성종, 유석성, 김명용, 조병하, 송순재, 최신한 등 ... 옛 추억에 젖어 잠시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30대 후반에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어언 30년이 되어가는 동안 내게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마치 세월이 한 순간에 지나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공자의 말대로 소년은 늙기 쉽지만, 학문은 이루기 어렵구나!

 

독일(프라이부르크)

(2016년 6월 3일)

오늘(6월 2일) 오후에 가까운 마을 프라이부르크를 다녀왔다. 얼마 전부터 독일 남부 트로싱엔 한인교회에 출석하시는 베이스 성악가 이진석 씨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시는 오페라 "메티토펠레"(괴테 원작 파우스트, 보이토 작곡)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Stadttheater)은 1905년에 지어졌지만, 전쟁 중에 크게 파괴된 이래 몇 차례 소박하게 개축되었고, 여전히 고풍스러운 자태를 보여준다.
  한국인이 음악의 본 고장 유럽에서 오페라의 주연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케스트라와 목소리의 조화가 나무랄 데가 없이 탁월하다. 조금 일찍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해 도시 주변을 살펴 보았다. 독일에서 가장 자연생태적인 도시로 알려진 프라이부르크는 이름(자유성)답게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외국인과 특히 흑인이 자주 눈에 띈다.

 

   

 

 

독일(엥스트라트)

(2016년 6월 9일)

 

내가 머물고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의 개신교회 성 베드로 교회당을 둘러 보았더니, 몇 가지 특이한 요소를 발견했다.
1) 교회당 내부로 들어가는 두 개의 작은 출입구가 옆 벽면에 있다. 문이 늘 잠겨 있고,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들은 지정된 곳에서 열쇠를 가져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 다른 교회당처럼 여기도 별관(Gemeindehaus)이 세워져 있다. 오늘(토요일) 오후에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찬양하는 소리가 창밖으로 흘러나온다.
...
3) 교회 안내판이 두 군데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5월 28일(일요일)부터 6월 16일(목요일)까지 목사와 교회의 일정이 빠짐 없이 기록되어 있다.
4) 창조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교회가 태양빛에서 전기를 얼마나 생산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전광판도 있다.
5) 교회 뒷뜰에는 1914년부터 지금까지 사망한 신도들의 이름을 빼곡히 새긴 비석과 돌 조형물이 꽃밭에 서 있다. 비석 전면에는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 권면하기 위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6) 담장 한쪽에는 1776년에 태어나 1855년에 사망한 어떤 사람(아마도 담임 목사)을 기억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나팔 소리가 당신을 다시 살릴 때까지 편히 쉬어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7) 교회당 바로 앞에 있는 목사관이 매우 크고, 아름답고, 매우 고색창연하다.

         

 

독일(울름)

(2016년 6월 10일)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고 날씨도 따뜻하여, 유학 시절에 한번 가 본 울름(Ulm)에 다시 가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종탑(161m)을 자랑하는 울름 성당은 1377년에 시민들에 의해 계획되었지만, 160년 후인 1534년에 비로소 시민과 기업의 재정 지원 아래 착공되었고, 착공된 지 356년만(1890년)에 종탑까지 완성되었다. 전쟁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지만, 지금도 보수 중이다.
   울름 도시는 거의 완파되었지만, 보존되거나 새로 지은 전통적 건물이 현대적 건물과 잘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아래로 기울어진 목조 주택이 눈을 끈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호텔로 사용된다니 신기하다.
   성당 내부에 다녀간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는 메모판이 있길래, 아내가 "웅장함과 정교함에 감동을 받았다."고 써 붙였다. 나중에 누가 이 글을 보고 반가워할지 모르겠다.

 

 

  

독일(외링엔)

(2016년 6월 11일)

 귀국을 3일 앞두고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 외링엔(Oehringen)에 기차로 다녀왔다. 15년 전에 만하임 한인교회를 섬기던 중에 세상을 떠난 친구 (고) 하윤철 목사의 사모와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들과 딸을 훌륭하게 키운 사모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무척 기쁘고 감사했다. 아들은 뮌헨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컴퓨터 컨설터로 일하고 있고, 딸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지금 김나지움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친단다.
   정성껏 차려놓은 풍성한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에 함께 마을 구경에 나섰다. 오래된 개신교회당(Stiftkirche)을 보고 나서, 옛 궁전에서 때마침 열리고 있던 "꽃 전시회"를 보았고,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정담을 나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독일(트로싱엔)

(2016년 6월 12일)  

독일 남부 한인교회는 네 지역(슈투트가르트, 튀빙엔, 괴핑엔, 트로싱엔) 교회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하는 이 교회는 과거에 한국교회협의회(KNCC)에서 파송된 목사들이 독일개신교회(EKD)의 재정 후원 아래 섬겼지만, 지금은 한인 성도들이 재정의 절반을 감당하고 있다.
  유학시절에 나는 튀빙엔교회를 다녔지만, 이번에는 조용자 권사님을 따라서 트로싱엔교회를 다녔다. 이 교회도 독일교회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고, 정착한 한인들과 유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귀국 전에 마지막 예배를 드린 후에 교회당 안팎을 자세히 촬영해 보았다. 이 교회의 이름은 마르틴 루터 교회다.

1) 본당 좌우에 우치한 두개의 별관은 봉사와 친교, 교육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된다. 한 건물은 "디트리히 본회퍼 하우스"라는 이름을 병기하고, 건물 안에 본회퍼 사진을 여러 장 붙여 놓았다.
2) 본당 입구 위에는 루터의 노랫말 "내 주는 강한 성이다."(Ein feste Burg ist mein Herr)가 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옛 독일어가 - 당연히 - 지금과 달랐다는 점이다. 요즘 독일어로는 "fester"(남성 어미)라고 써야 한다.
3) 전면 중앙에는 제단이 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조각상 아래에는 수정이 박힌 십자가가 중앙에 놓여 있고, 그 아래에는 꽃과 성경이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촛대가 3개 씩 놓여 있다.
4) 뒷면 2층에는 작지 않은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독일의 모든 교회당에는 오르간이 있다. 독일 찬송가의 가사는 대부분 성서(시편)에서 따온 것이고, 멜로디는 비교적 단순하다. 한인교회는 주로 피아노를 사용한다.
5) 제단 아래 좌측에는 세례대와 큰 촛대가 서 있다. 독일교회도 침례가 아니라 세례를 베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촛대는 조명 효과보다 상징 효과를 더 강하게 풍긴다.
6) 다른 안쪽 벽면에는 큼직한 루터 초상화 걸려 있다. 교회와 교단의 기원과 정체성을 분명히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루터를 그려놓았다.
7) 제단 아래 우측에는 나무로 조각한 독특한 모양의 형상이 서 있다. 한국인 예배 시에는 설교단으로 쓰이지만, 지금 독일교회는 이를 어떻게 사용할까?
8) 좌측 기둥 벽면에는 매우 화려한 설교단이 붙어 있다. 오래 전에 지어졌기 때문에 더 화려한 듯하다. 설교단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오래 쳐다보기 어려울 듯하다.
9) 본당 전면과 벽면에는 여러 개의 스테인 글라스 창이 있는데, 한 곳에는 큰 돈을 기부한 자(Hohner = 아코디언, 하모니카 제작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10) 전면 앙쪽 벽면에는 성경구절이 기록된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담대하게 부르짖고, 주저하지 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마라."
11) 왼쪽 벽면에는 "오병이어"가 포함된 멋진 문양이 그려져 있다. 17, 42라는 숫자는 아마도 교회당이 세워진 년도를 표시하는 듯하다.
12) 본당 입구 우측 벽면에는 작은 헌금함이 걸려 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독일교인들은 종교세를 내기 때문에 따로 헌금하지 않는다. 한인교회는 헌금 바구니를 돌리고, 여기서도 십일조를 바친다.
13) 독일교회는 주보를 만들지 않고, 예배 순서를 양쪽 벽면에 표시한다. 그러나 독일교회는 정기적으로 교회 소식지를 발행하는 것 같다.

      

           

 

독일(정원)

독일인의 집은 대체로 단순하고, 실용적이고, 매우 튼튼하다. 그 대신에 독일인은 창가와 발코니, 정문 입구와 주변의 정원을 매우 아기자기하게, 섬세하게, 개성 있게 가꾸기를 좋아한다. 독일인의 이 두 가지 다른 기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수많은 철학자와 신학자, 과학자를 배출할 정도로 독일인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음악가와 운동 선수를 배출할 정도로 독일인은 감성적이고 역동적이기도 하다.
  독일인의 이런 기질이 집과 정원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 같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방이 얼마나 실용적, 합리적으로 꾸며져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렇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정원이 얼마나 정겹고 예쁜지 역시 감탄하게 된다.

 

독일(꽃)

독일은 숲과 들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꽃의 나라이기도 하다. 정원과 들판에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다채롭게 피고 진다.
  장미, 패랭이, 나리, 개나리, 찔레꽃(들장미), 수선화, 원추리, 제비꽃, 물망초, 채송화, 목단과 같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꽃 외에도 앙증스럽고 예쁜 온갖 꽃들이 집 주위를 장식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기며 걸음을 멈추게 한다.
  얼마 후에 독일을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이 꽃들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이 밖에도 더 많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지만, 30개만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다. 한국의 정원과 들에도 이처럼 많은 꽃들이 피어나길 소원해 본다.

       

       

   

 

 독일(들과 숲)

오늘은 귀국을 하루 앞둔 날이다. 날씨가 여전히 흐리다가 갑자기 맑아지고, 맑았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뿌린다. 그래도 집안에만 틀여박혀 지내기가 따분하여 산책에 나섰다. 약 두 시간 동안 들과 숲 사이에 난 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을 내려다 보거나 지나가면서, 다시 한 번 독일의 자연을 실컷 누려보았다.
  보리밭이나 밀밭 사이를 지날 때면 감흥에 젖어 "보리밭" 노래를 불렀고, 먼 지평선과 높은 하늘을 볼 때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참으로 크다. 문명 앞에서 나는 인간의 위대함에 경탄하게 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을 전혀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섬세한 손길과 생생한 숨결을 느끼게 된다.
  
저녁에는 이미영 집사님의 초대를 받아 색다른 프랑스 음식 "라끌레" 등을 먹었고, 나의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흥겹게 추억의 노래를 불렀다. 푸른 자연과 친근한 인간과 추억의 노래가 주는 환희에 흠뻑 빠진 하루였다. 아름답게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숲과 들과 마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신나게 차를 몰고 귀가했다. 오늘 하루도 나를 반겨준 자연과 사람과 문명의 은혜에 감사를 돌린다.
  그 동안 나의 "유럽 여행기"를 읽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준 페친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여행이 주는 남다른 기쁨과 유익한 정보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독일(날씨)

유럽의 날씨가 심상치 않다. 6월 중순이 되어도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혀 있고, 잠시 해가 짱하고 나오더니 이내 폭우를 쏟아낸다. 아침 저녁에는 두말 할 것도 없고, 낮에도 기온이 써늘해져 난 여전히 두꺼운 잠바를 입고 다닌다. 가져온 봄 옷은 꺼내보지도 못했다. 예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현상이란다.
  작년 6월 말에 스위스에 묵을 때에는 역시 예년에 볼 수 없던 무더위가 찾아와 에어컨이 없는 호텔에서 잠을 설쳐야 했다. 지구가 급속한 기후 변화를 겪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안도가 되는 점은 공기가 매우 맑고 신선하고, 잦은 비 때문에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돌아가려니 공기 오염에 걱정이 앞선다. 예년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 무더위보다 더 괴로울 것 같은 대상은 최악의 황사와 미세 먼지다.

  지금 유럽에는 전쟁 난민이 몰려오지만, 미래엔 기후 난민이 증가할지 모른다. 그 중에 나도 들어 있을까 두렵다. 작년 겨울에 태국에 갔더니, 추운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엄청 많았다.
  나같이 외국에 자주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피난갈 수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의 주범은 주로 부자들이지만,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그래도 독일은 원자력과 화력 발전소를 줄여나가고 자연 에너지 생산과 환경 보호에 매우 열심이다. 가장 큰 걱정은 아시아다. 일본의 원전 사고, 중국의 황사와 오염, 한국의 먼지 등으로 인해 우리의 건강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매우 미약하다.
  나부터 먼저 에너지 절약, 검소한 생활,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실천해야 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이제는 정신 혁명에 맞먹는 급진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아니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하신 것 같다. 인류는 과연 거듭날 수 있을까?

 

독일(제비)

독일 시골 마을에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여러 새들이 독특한 소리를 내며 지붕과 전깃줄에 앉아 있거나, 눈 앞에서 뒤뚱 걷거나 총총 걷다가 날아가곤 한다.
  그러나 내게 제일 반가운 새는 제비다. 오래 전에 시골 마을 현풍에 살 때도 보기 어려웠던 제비를 여기서는 흔히 본다. 한국에서는 집 주인이 처마 밑에 받침대를 붙여주면, 제비가 지푸라기와 진흙을 입에 물고와 스스로 집을 짓지만, 독일인은 친절하게도 아예 집까지 모두 매달아준다. 아마도 제비집을 시장에서 구입하는가 보다.
  독일에 제비가 많다는 것은 생태 환경이 매우 깨끗하다는 증거다. 집 앞의 작은 개천과 들판의 실개천도 매우 맑아서, 나는 가끔 그 물로 손을 씻는다.

  내가 자주 애창하는 노래 "제비"의 가사처럼 나는 바람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봄마다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려면,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 제비를 다시 보며 노래할 수 있을까!

 

끝까지 봐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Danke herzlich, dass Sie bis zum Ende mich begleitet haben!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Interest to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