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34)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와 무관한가?

 

(2017년 10월 9일)

 오늘 아침에 일어나 페북에서 옥한흠 목사님의 짧은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옥한흠 목사님은 제자 훈련을 위해 크게 헌신하신 분이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나는 즉시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 먼저 그분의 메시지의 초점에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가 복음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고 이를 중심으로, 그리고 이에 초점을 맞춰 설교하는 모습이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많은 목사님들이 평안이니, 행복이니, 성공이니, 축복이니 하는 말로써 복음의 본질을 흐리거나 호도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옥한흠 목사님이 복음의 본질에 초점을 맞춰 설교하는 모습에 역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역시 존경할 만한 분이다.

그러나 옥한흠 목사님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는 매우 왜곡되어 있음을 보고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고 말하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어법은 예수님에게도 발견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정치적 현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 현실을 변혁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현실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실천하려는 자는 정치적 현실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 것이지, 이 세상 현실과 전혀 무관하거나 저 멀리 다른 곳에 존재하는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자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정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세상은 그저 그런 것이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으니, 세상 관심을 그만 두어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현실적, 현재적 통치를 부인함으로써 현실을 등지게 만들거나 극단적으로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매우 이분법적이고 묵시문학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매우 이분법적인 묵시문학도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현실을 가져온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고, 그래서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는 힘으로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옥한흠 목사님의 말은 마치 현실을 등지고 내세만을 바라보라는 듯이, 현실을 매우 비관적으로만 바라보는 듯이 들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특정한 영역이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상태나 현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통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게, 더 열렬히 정치적 현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칼 바르트도 정치를 그리스도인이 드려야 할 제3의 예배라고 말했다.

옥한흠 목사님이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를 세웠음에도 그가 세운 교회와 후임 목사가 왜 불의한 정치적 현실을 올바로 변혁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남아 있는지를 어느 정도 추측하게 해 준다. 한국에서 매우 존경받는 목회자로 알려진 옥한흠 목사님의 메시지가 이 정도라면, 대부분의 평범한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어느 정도일까? 매우 속상하고, 정말 안타깝다. 우리가 지금까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우리가 지금까지 복음을 실천하기는커녕, 도대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었을까? 무엇보다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나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반성하게 된다.

아래 글은 안겸손이라는 페친이 페북에 올린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의 한 부분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스릴 공의로운 나라가 우리 앞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만큼 큰 불행은 없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기회를 놓치는 것만큼 큰 손해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사람이라도 더 전도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주님이 다스리는 공의로운 그 나라가 우리 앞에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세상 나라나 세상적인 야망, 세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이렇게 분명히 경고 하고 싶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수 없는 상처와 절망을 체험하면서도 여전히 이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사람만큼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까? 그 나라가 지금 눈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전도하지 않습니까? 목전에 와 있는 그 나라를 보면서도 옆에 있는 형제나 이웃을 그 나라로 인도하고자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면 저는 그에게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냐고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으신 그 종을 분명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분이 다스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계시는 분이라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볼 때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대통령만 뽑으면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아요? 세상은 항상 그런 거요.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 나라에 뭐 그렇게 열을 올리고 입에 거품을 품고 욕을 하고 법석을 떱니까? 그만두고 예수님을 믿고 그가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그 나라로 함께 들어갑시다."

왜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까? 안 믿으니까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가 자신 있게 바라보지 않으니까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 믿는다면 왜 말을 못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