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48)

 

 

 김형석 교수 유감

 

 

 (2021년 9월 6일)

 

정철승 변호사가 김형석 교수를 비판하더니, 김형석 교수의 딸이 자신의 부친을 인신공격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앞으로 또 누가 나서서 왈가불가할지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나도 입이 근질거려서 한마디 보태고 싶다.

나의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 설교와 독서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내가 즐겨 읽었던 것은 만화, 소설, 수필, 시 등이었는데, 당시 안병욱 교수와 함께 높은 명성을 떨친 김형석 교수가 쓴 수필은 나의 정신과 인격 형성, 진로 결정에도 큰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오랫동안 그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고, 최근에는 그에 관한 소문조차 잘 들려오지 않아서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100세를 넘도록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 몇 년 전에 서울신학대학교 인문학 강좌의 강사로 온 그를 처음 만나 보았다.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그에게 감사를 드렸고, 여전히 지혜롭고 건강한 강의 내용에도 감동을 받았다.

그러다가 그가 신문에서 가끔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기억을 되살리자면, 그의 글에는 정치적 발언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철학자와 문필가인 그가 정치에 대해서는 왜 무관심했는지는 궁금했지만, 그의 관심과 사명이 아마도 정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나름대로 변명해 보았다.

그런데 최근에 이따금 들려오는 그의 정치적 발언에 나도 적잖은 충격과 실망을 느꼈다. 거의 극우적 발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그의 발언은 매우 친일적이었다. 그래서 정철승 변호사가 작심하고 그를 공격한 듯이 보인다.

만약 그의 삶이 일관적이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판단력과 정보력이 떨어지기 쉬운 고령에 매우 예민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정치 문제에 용감히 훈수를 놓다가, 세인의 혹평을 듣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그의 딸의 말대로 군사 정권 아래서 그가 가끔 고초를 겪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내가 무지한 탓인지는 몰라도, 언론과 방송에서 그런 발언과 비슷한 소문을 전혀 듣지 못했다. 군사 독재자의 핍박이 가혹했던 시절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도 그가 정치적 발언을 하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과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이렇게 갑자기 변하다니 ... 나이 탓인가? 아니면 새로운 각성인가? 김지하, 김진홍, 김동길에 이어 김형석이라니 ... 김씨 가문의 세력 규합도 분명히 아닐 터인데 참 거시기하고 머시기하다.

그래도 나는 그를 죽기까지 존경하련다. 나도 오래 살다 보면 안 그런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 않은가? 아마도 그가 자발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노련하고 간악한 정치꾼들에게 순진하게 이용당한 듯도 싶다. 나도 늙어갈수록 정치적 발언에는 더욱 신중해야 하겠다고 결심하니, 그가 여전히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 고맙다. 반면교사도 분명히 교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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