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야 할 길

 

 


이신건 박사(조직신학)

 

 

나의 신앙의 뿌리는 디모데처럼 친조모와 외조모에 두고 있다. 친조모는 성결교회 선교사와 목회자로부터, 그리고 외조모는 장로교회 목회자로부터 전도를 받았던 것 같다. 나의 부모도 자연히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셨고, 나는 뱃속에서 신자가 되어 태어났다. 어릴 적에 나는 부산의 성결교회와 나사렛교회를 다녔고, 중학교 때부터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수정동 성결교회를 다녔다.

그 당시에 교회는 나에게 단지 신앙의 모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가 주지 못했던 다양한 교육과 즐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교회에서 내가 들었던 설교와 교육은 전통적인 개인 구원을 주로 강조했고,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서울신학대학의 강의와 설교는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한 편이었다. 그런 탓인지 나도 주로 개인의 회심과 변화를 강조하는 서적들만을 골라 읽었다.

그러나 학교의 옛 캠퍼스가 서울 도심의 한복판(충정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 독재 정치 아래서 저항 운동이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났을 때, 혈기왕성한 나도 신학적 확신과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 때문에 민주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그 때문에 무기정학 처분을 받아 일 년 이상 학교를 떠나야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고, 그래서 독서는 나의 지적 성장의 주된 수원지 역할을 했다. 대학 시절에도 나는 강의보다는 독서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읽게 된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나의 신앙과 신학을 완전히 새롭게 형성했다. 튀빙엔 대학에서 몰트만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마친 후부터 그의 책을 읽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의 신앙과 신학도 몰트만처럼 점점 더 역사적, 종말론적 방향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 유학 시절에 경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과 한국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등과 같은 충격적인 재앙은 나의 관심을 “자연”으로 서서히 돌려놓았다. 그리고 학교의 부당한 교수 재임용 거부의 경험 속에서, 그리고 무수한 어린이 학대 사례를 목격한 이래 나는 힘없는 자들의 고난에 더 깊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결과로 “어린이 신학 – 하나님을 어린이로 생각하기”라는 독특한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성결교회의 신학이 매우 혼란스럽다는 강한 인상을 받은 후부터, 특히 성결교회 신학의 미래적 전망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성결신학연구소”를 개설하였고, 수많은 자료를 모아서 인터넷 홈페이지(http://sgti.kr)에 올려놓았다. 여기에는 성결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를 비롯하여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의 자료들도 상당히 수록되어 있다.

올해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는 지금까지 15권의 책을 썼고, 20권 이상의 독일 서적을 번역했다. 이로 인해 나는 일찍부터 초교파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주로 학교 활동에 집중하는 대다수의 교수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홈페이지와 페이스 북에도 자주 글을 써서 올린다. 이런저런 방식을 통해 나는 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과도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기를 원하며, 은퇴한 후에도 이런 노력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지금 한국 교회와 신학대학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다행스럽게 나는 큰 위기를 겪지 않고 학교를 조용히 떠나지만, 미래의 세대는 적잖은 고민을 해야 하고, 더 힘든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은퇴자로서 세월을 유유작작하게 보내야 할까, 아니면 과거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까?

한국 교회의 위기는 대개 무기력한 신앙과 도덕적 비리에서 비롯하지만, 그 깊은 뿌리 속에는 기독교 신앙의 오해와 왜곡이 촘촘히 얽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신자들, 특히 목회자들도 대부분은 인격 형성에 실패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양적인 성장이나 수적인 성공보다는 질적인 성장과 온전한 인격 형성을 위해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쉬운 글쓰기와 새로운 소통과 생활 방식을 통해 한국교회의 갱신과 성숙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원한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니, 내가 지금까지 힘겨운 인생을 비교적 가볍게 달려온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 가족과 친구와 동료의 도움 때문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가끔은 나약하고 비겁했지만, 그리고 더러 저돌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했지만, 헛된 사심과 악한 욕심을 부린 적은 결코 없다. 그래도 만약 나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거나 고통을 겪었던 자들이 계신다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너그러운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다.

성결교회는 한국에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선배들의 값진 희생 덕분임을 나는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러나 성결교회는 이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신학적 유산은 아직도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견해들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만족할 만한 합의를 이루지도 못했다. 온갖 새로운 정보와 다양한 신학의 유입 속에서 우리는 갈 길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정치적 충돌과 무기력 속에서 점점 더 침체해 가고 있고, 신학대학은 미래의 격랑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새롭고 믿음직한 강력한 리더십이 전혀 출현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교회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었지만, 지금은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주범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교회가 세상을 이끌어갔지만, 지금은 세상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결교회와 서울신학대학교는 공허한 과거 자랑과 남의 잘못 타령을 이제는 단호히 멈추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과감히 투자하고 투신해야 한다. 해묵고 공허한 “성결” 자랑을 넘어서 이제는 인류에게 더 큰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해야 한다. 미약한 나도 남은 생애 동안 성결교회와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위기에 처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미력을 보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서울신학대학교 “성결교회와 신학” 제39호 2018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