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죄인가?

 

 

(2019년 7월 4일)

 

 

동성애가 도덕적으로 옳든 그르든, 성서적으로 옳든 그르든, 동성애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고, 선진국은 이미 동성애를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나 비판해야 할 범죄로 보지 않는다. 이른바 복음적, 보수적, 정통적인 한국교회가 아무리 불편하게 여겨도, 우리나라도 머잖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 내가 동성애를 지지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문제는 동성애 지지 여부가 아니라 지금 동성애를 격렬히 반대하는 교회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 동성애를 은근슬쩍 인정하거나 적당히 방관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다른 사례를 보아도 이 점은 명백하다. 예전에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극장, 춤, 음주, 현대 악기, 주일 활동과 오락, 이혼과 재혼 등을 매우 비판했지만, 아주 보수적인 교회를 제외하고는 지금은 이런 것들을 전혀 (거의!) 문제시하지 않는다.

유럽교회는 오래 전에 이자(利資)를 엄격히 거부했고, 그래서 공적인 직업을 거부당해 왔던 유대인에게 이를 허락했다. 그 덕분에 유대인은 지금 세계적인 금융가로 도약했다. 지금은 아무리 보수적인 교회도 이자 활동을 금하기는커녕, 여유 자금을 은행이나 토지 등에 투자하여 최대한 이자를 늘리려고 애쓴다.

그러므로 내가 정말 궁금히 여기는 것은 동성애가 과연 비도덕적, 비성서적인지가 아니다. 다수의 교회가 언제쯤 동성애를 더는 비판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극렬한 동성애 반대자들도 끝까지, 죽을 때까지 과연 자신의 소신을 지킬 것인지가 가장 궁금하다.

지금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동성애가 아니라 양적, 질적인 침체이고, 한국의 심각한 문제는 실업과 환경오염, 자살과 분단, 빈부격차, 세대 단절 등이다. 이런 문제의 극복을 위해, 그리고 교회의 갱신을 위해 모든 재원을 집중해도 부족한 현실에 동성애 반대에 몰두하는 모습은 자신의 수치를 이로써 덮어보려는 야비한 전술이거나, 자신의 실패를 남에게 전가하려는 억울한 희생양 만들기 작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모습도 한국교회의 무능과 부패를 여실히 드러내는 또 다른 표지가 아닐 수 없다. 아침부터 이런 말을 해야 하는 나의 기분도 자못 씁쓸하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