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2019년 7월 15일)

 

좌와 우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가 없다면 좌가 없고, 좌가 없다면 우도 없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상대가 마치 원수처럼 인식되곤 하지만, 둘은 철저히 공존하고 보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좌가 우의 오른 쪽에 서면 우가 되고, 우도 좌의 왼 쪽에 서면 좌가 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좌도 없고 완전한 우도 없는 셈이다. 그때그때마다 인간이 형식적으로 좌와 우를 나눌 따름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우파가 좌파라고 공격하는 많은 사람들도 유럽에서는 우파에 훨씬 가깝다. 좌파가 우파라고 공격하는 사람들 중에도 작은 집단 안에서는 좌파보다 더 좌파적인 사람들도 많다.

인간의 몸은 신기하게 좌와 우가 균형을 이루거나 보완하고 있다. 물론 한 쪽이 없을 경우에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다른 한 쪽이 결핍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 눈, 손발, 허파, 콩팥 등이 그렇다. 그러나 뇌는 완전히 다르다. 좌뇌와 우뇌는 분리할 수 없거니와, 비록 의학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고 해도, 한 쪽 뇌가 없는 인간은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거의 어렵다. 새도 두 날개로 난다. 한 쪽 날개를 없애는 순간에 새는 날지 못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좌파가 우파가 서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흔하다. 우파가 좌파를 공격할 수는 있지만, 좌파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순간 좌파는 제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좌파가 우파를 공격할 수도 있지만, 우파를 “매국노”라고 부를 때도 비슷하다. 친북, 친일, 왜구, 보수꼴통, 공산주의자 등도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제거하고 싶을 때 자주 동원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역사에서 오직 우파만이 존재했더라면, 우파는 자신이 공격할 수 있는 좌파가 없기 때문에 금방 힘과 명분을 상실했을 것이다. 좌파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좌파는 우파를 낳고 우파가 생존하는 토대를 깔아준다. 그러므로 오직 한 쪽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단 한 하나밖에 없는 것들이 거의 중간에 있다. 코, 입, 목, 위, 성기, 항문 등이다. 그래서 좌와 우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 종종 중도가 힘을 발휘하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직 하나밖에 없지만 왼 쪽에 있는 중요한 기관이 있다. 바로 심장이다. 왜 심장은 중간에 있지 않고 하필 왼 쪽에 치우쳐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인가, 진화의 산물인가, 우연의 결과인가? 좌우간 심장이 왼 쪽에 뛴다는 것은 마치 역사가 좌파의 힘으로 진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얼마 전에 일본인 재미학자 후쿠야마는 공산주의의 몰락 후에 쓴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 또는 자본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고 인류 최후의 정부형태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완전히 죽었다는 사형 선고를 내린 셈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종구국인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도 자본주의를 과감히 도입했지만, 유럽과 남미의 많은 나라가 사회주의 실험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유럽에서는 급속히 증가하는 실업자를 위해 최저 생계비를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박원순, 이재명 등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머잖아 많은 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그렇다면 후쿠야마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유발 하라리도 그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역사의 끝은 연기되었다.”고 말한다. 생태계의 붕괴와 정보 기술과 생명 기술, 대량 실직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위험 앞에서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매우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체제를 또 다시 실험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위기 앞에서 우파가 좌파를 헐뜯고 죽이려고만 든다면, 우파도 죽고 모두가 공멸할 것이다.

몸이 허약해질수록 심장의 박동소리를 더 세밀히 들어야 하듯이, 경제가 비틀거리고 사회가 와해되어 갈수록 좌파의 주장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우파가 힘을 회복할 때까지 지금은 좌파가 더 힘차게 뛰어야 한다.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