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부치는 글

 

 

(2019년 7월 17일)

 

법 또는 법의 정신을 엄격히 적용하자면, 명성교회의 목회자 세습은 처음부터 명백한 불법이었다. 내가 서울신대에서 쫓겨난 것, 그리고 지금 김영인 교수가 나처럼 재임용을 거부당한 것도 명백한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 특히 교인들과 교회의 지도자들까지 자주 불법을 행하는가? 세상에는 대개 세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법 아래의 사람, 법의 사람, 법 위의 사람이다. 법의 사람은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 법 아래서, 그리고 법 위에서 불법을 마구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어지럽고 시끄럽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인류의 거의 절반은 일평생 추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단다. 이런 사람은 대개 동물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동물적 탐욕이 법보다 더 강하다. 이런 사람들을 길들이는 것이 교육과 종교와 경찰 등인데,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마저 동물적이라면, 대책이 전혀 없는 셈이다.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오늘날 적지 않다. 대개는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그러하지만, 매우 자유롭거나 천재적인 사람들, 예술적이거나 종교적인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상과 예술과 종교의 자유를 외치면서 법을 초월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역사와 문명이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만약 다른 사람을 마구 착취하고 억압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사람들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평범한 우리도 종종 법을 넘어서야 할 때가 있다. 사람이 먼저 나고 법이 나왔지, 거꾸로 법이 먼저 나오고 사람이 따라 나온 것은 아니다. 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사람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법치주의자이지만, 광신적인 율법주의자는 아니다. 예수는 다수의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지도자들에 맞서 율법을 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공동체가 큰 위기를 당했을 때에도 법을 넘어서야 할 경우가 발생한다. 물론 이럴 경우에도 반드시 민중의 지지와 다수의 합의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런 행위는 정당성을 얻지 못하며, 소수에 의한 다수의 폭력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법을 무시하고 초월해 가면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학대하고 살해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골칫덩어리다. 대개 포악한 독재자들, 악질적인 부자들, 교활한 지식인들이 이런 짓을 행해 왔다. 오늘날도 우리는 법 위에서 법을 마구 훼손하는 독재자들을 자주 발견한다. 지금 우리는 포악한 독재자의 재림을 보고 있다. 일본 총리 아베와 그의 추종자들, 실정법을 유린하는 국회의원들, 불법적인 세습을 감행하고 한국교회를 욕보이는 목사들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을 우리가 무엇으로 길들여야 하는가? 오늘은 뜻깊은 제헌절이다. 헌법은 처음부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나라의 주인이 일어나서 범법자들을 끌어내려야 한다. 촛불과 투표로! 이런 일이 완전히 불가능해질 때에는 의열단이 등장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늘이 직접 최종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면, 민심이 천심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칼 바르트의 말대로 히틀러와 같은 폭군을 끌어내리는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백성의 권리(저항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