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원수인가?

 

 

(2019년 8월 4일)

 

“하나님의 다스림은 그대의 원수들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본회퍼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자명한 사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원수들 가운데 살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원수들 가운데 살아야 한다.”(신도의 공동생활)

지금 일본 수상 아베 때문에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그가 우리를 적으로 여긴 이상 우리도 그를 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그가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된 적이 없었지만, 언제부터 우리의 원수가 되었는가? 아마 처음부터 그랬을 것이다. 아베 이전에는 우리가 특히 북한을 원수로 여기고 살았다. 북한도 미국과 남한을 원수로 여겨왔다. 특히 미국을 향한 북한의 적개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미국을 강한 어조로 "원쑤"라고 부른다.

그래서 원수라는 말을 화두로 삼아 우리의 상황을 한 번 고민해 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누가 원수인가?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사탄을 가장 강력한 원수로 여기고 있다. 예수님이 오래 전에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이 여전히 세상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고, 예수님을 잘 믿는 자들은 사탄에서 벗어난 셈일까?

사탄 다음으로, 또는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가장 힘센 원수는 누구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나의 가장 큰 원수는 바로 나다. “지옥은 타자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남에게는 나도 지옥인 셈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본다면, 나도 실제로 지옥을 만드는 주범일 수 있다. 천국이 먼 곳에 있지 않듯이, 지옥도 그러하다. 내가 나와 세상의 주인이 되려는 순간부터 나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내가 남과 나 자신에게도 원수가 되고 만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내가 왜 예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가? 먼지처럼 작고 연약한 내가 나를 세상과 우주의 중심에 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근대사에서 우리의 원수는 분명히 일본이었다. 우리가 일본을 먼저 원수로 만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안에서 누가 먼저 원수 노릇을 잘 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지만, 자신이 마치 우리나라의 주인인 양 남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괴롭힌 자들은 원수다.

원수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수 극복이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으로 극복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개인 간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국가 간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독일 기독교민주당을 창당한 나우만 목사는 “우리는 산상설교로 정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 간의 분쟁과 전쟁을 사랑과 용서의 원리로 해결할 수 없다는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주장이다.

기독교를 가장 잘 믿는 국가로 자처한 미국도 원수를 사랑으로 극복한 적이 내 기억으로는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북한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북한 타도와 흡수 통일을 외쳐 왔으며, 위기 속에서는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강하게 의지해 왔다.

그러나 이런 어리석은 행동으로는 원수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없다. 아베의 가장 큰 잘못이 일본을 또 다시 패권국가로 만들려는 헛된 욕망에 있다면, 우리도 아베와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아베가 우리를 원수로 삼더라도, 우리까지 그와 똑같이 일본을 원수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자주독립국가로 우뚝 서야 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 대신에 패권국가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안의 원수가 누군지를 면밀히 살피고 이들을 극복하는 것도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남을 괴롭혀 놓고 여전히 반성과 회개를 하지 않는 사악한 가해자들, 자신의 잘못을 가리고 미화하려고 남을 원수로 만드는 거짓 애국자들은 바로 원수가 아닌가? 자신의 이익에 어긋나는 자들을 무조건 원수라고 외쳐대는 자들은 바로 원수가 아닌가? 공존과 평화보다는 패권과 전쟁을 추구하는 자들도 원수가 아닌가?

그러므로 원수를 이기고 원수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지혜를 간구하는 기도가 오늘날 더욱 절실해졌다. 주님, 어리석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소서! 오직 주님만이 세상의 주님이시니, 모든 거짓 주인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헛된 우상들과 악한 원수들이 속히 사라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