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목사들

(2020년 2월 12일)

 

큰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죗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주장이 성서와 교회사 안에서 종종 나타나고,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나타난다. 예전에 김홍도와 김삼환이 그렇게 설교했는데, 최근에는 그들에게 질 새라 김진홍도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김진홍은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아침묵상 "우한폐렴과 중국교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중국교회의 박해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중국 코로나 바이러스의 첫 희생자가 교회의 철거 반장이라는 주장이다.

과거에는 무척 존경했지만 지금은 경멸하지는 않아도 생각하기도 싫은 그의 글을 인용하고 비판하는 나의 심기도 여간 불편하지 않다. 기도와 독서와 현장을 떠난 기독교인들은 언제라도 저렇게 헛소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나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런 분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우선은 반면교사로 삼기를 좋아한다.

저런 소문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서, 그들이 최소한 성경만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저런 헛소리를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욥기를 안 읽어 보았나?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자에 관한 이야기(요 9:1-7)를 안 읽어 보았나? 실로암 망대 사건 이야기(눅 13:1-5)도 안 읽어 보았나?

중국 정부의 기독교 박해는 마땅히 거센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역지사지해 보면, 중국인이 왜 기독교를 저렇게 미워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중국은 유럽 열강의 침략을 받았고, 기독교 선교도 이런 흐름 속에서 침략을 이용하며 이루어졌다. 기독교적인 국가 영국이 중국에 행한 무도한 범죄, 예컨대 아편 전쟁을 생각해 보라. 중국에서 녹차를 수입할 돈이 떨어지다 보니 영국은 결국 아편을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중국과 충돌하고 중국 땅을 점령까지 했다.

기독교를 가장 잘 믿는다고 으스대고 예수를 전하던 영국이 중국을 철저히 유린했지만, 지금까지 영국인들이 중국인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이러니 중국인이 기독교 선교의 진정성을 믿겠는가? 만약 내가 중국인이었다면, 내가 앞장서서 기독교를 박해할 가능성이 매우 짙을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도 우리에게 많은 해악을 끼쳤다. 그래서 우리가 입은 상처 때문에 중국인을 미워할 수도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목사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그렇더라도, 고통에 빠진 이웃 사람들을 먼저 구해낸 다음에 그들의 잘못과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와 보편적인 상식이 아닌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원수를 물속으로 더 깊이 밀어 넣고 이웃이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심사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일까? 예수님은커녕 부처님과 공자님으로부터도 나올 수 없는 고약한 심사다. 시정잡배도 저렇게 모질게 말하지는 않으리라. 쯧쯧쯧, 아침부터 입맛이 쓰다. 고얀 분들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