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2020년 2월 19일)

 

페북에서 어느 분이 말했다. “목사는 성경을 무시하고, 성도는 성경에 무지하다.” 언뜻 생각하면, 이 말은 거의 궤변에 가깝다. 설교를 자주 해야 하는 목사만큼 성경을 자주 읽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성도만큼 성경을 열심히 읽고 심지어 손으로 필사까지 하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나오며, 왜 나는 이런 말에 선뜻 반박하지 못하는가?

목사가 성경을 가장 자주 읽기는 하지만, 제대로 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성경을 골라 읽는 경우가 흔하다. 비록 성경을 계획적으로 읽어 나가더라도, 성경 전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성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성서신학을 전혀 모르는 성도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니 아전인수와 감정이입 방식의 성경 읽기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더욱이 한국의 성경에는 번역의 오류가 많으며, 애매모호하거나 이상한 번역도 많다. 설령 번역이 정확하더라도, 쉽게 해독되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그러므로 성경은 반드시 주석서와 함께 읽어야 하지만, 대개의 목사들은 분주함과 게으름, 영적인 교만과 지적인 무지 등으로 인해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성경을 체계적인 관점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직(신학), 체계적 성경 연구를 시도해야 한다. 물론 특정 교리의 안경을 미리 쓰고 성경을 읽는 것도 위험하지만, 성경의 한 부분만을 골라서 편파적, 이념적, 정략적으로 설명하거나, 인간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눈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는 더욱 더 위험하다.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큰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왜 섣불리 성경의 한 두 구절만을 근거로 삼아 용감히 설교하는가? 물론 여기는 목회적인 의도와 심리적인 동기도 분명히 작용하겠지만, 대부분 목사가 성경에 매우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본다. 더욱이 대개의 목사들은 조직신학적, 교리적 연구에 매우 소홀하다. 물론 소수의 목사들은 자신의 교단의 전통과 신학을 절대시함으로써 성경을 오독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그런 목사들은 더욱 폭넓은 조직신학적, 체계적 신학서적의 독서와 학습이 요구된다.

끝으로 오래 전에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어느 목사가 자신을 괴롭히는 장로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했다. 과거에 부흥강사는 이런 설교를 수시로 했다. 그러다가 몇 년 후에 목사의 아들도 교통사고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신앙 양심은 살아 있었는지, 그 목사는 얼마 후에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특히 남이 불행을 당했을 때에는 그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남을 판단하는 잣대로 자신도 판단을 받을 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을 비판하려거든, 자신의 눈의 들보부터 먼저 빼내야 한다. 비록 조직신학을 모르더라도 최소한 성경 전체를 꼼꼼히 읽었더라면,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헛소리를 결코 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수를 믿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을 오늘도 나는 깊이 절감한다. 아는 것을 실천하기도 어렵지만, 가짜 뉴스가 판치는 오늘날에는 사실과 성경을 제대로 아는 것은 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