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우정은 어느 정도까지 계급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진실한 우정은 계급의 장벽을 깨뜨릴 만큼 강력한 것일까? ‘우정과 계급’은 현실과 드라마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다. 오래 전에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정을 다룬 휴먼 드라마가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다. ‘남과 북’이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는 남과 북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의 동기생이 된 두 사람의 우정 관계를 진솔하게 다루었다. 남북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드러난 노예해방 전쟁 중에서도 이 두 젊은이는 끝까지 우정을 버리지 않고 깊은 관계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스토리는 우리 모두에게 진한 감명을 안겨다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에 방영된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도 남북의 계급 장벽을 넘어선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를 웅장하고도 스릴 있는 스케일로 보여준 적이 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 대개의 드라마는 철저한 남북 이데올로기의 대립 구조 속에서 우정만이 아니라 혈육의 정마저도 철저히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 최후의 분단국가로서 차가운 계급의 장벽, 철의 장벽으로 진정한 혈육의 정, 인간애를 가로막고 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두 명의 친구와 절친한 우정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만나 함께 활동하며 꾸준한 우정의 끈으로 서로를 굳게 동여 매여, 즐거우나 괴로우나 서로 신뢰하며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가정 형편과 비교해 보자면, 한 친구는 너무나 부유했고, 다른 한 친구는 너무나 가난했다. 부잣집 친구는 부모 한번 잘 만나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았고, 가난한 친구는 워낙 부모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탓으로 나보다 훨씬 더 궁핍하게 살았다.

나는 부자 친구의 집에 있는 자가용, 전화, 피아노, 실내 목욕탕과 화장실, 많은 방들을 부러워했고, 자주 함께 자고 함께 영화 구경을 했다. 물론 그 때마다 관람료는 늘 그 친구가 부담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우리 집에 와서 수제비나 보리밥을 맛있게 먹어 주었고, 부자라고 해서 우쭐대거나 거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인 차이를 전혀 느끼지 않았고, 나의 불행이 그의 행복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우정은 경제적인 차이 때문에 손상을 입지 않았다.

나도 매우 가난하게 살았지만, 또 다른 한 친구는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의 집은 너무나 작아서 여러 식구가 한 방에서 잠자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종탑 아래서 쭈그려 잠자기가 일쑤였고, 때로는 산속 동굴 속에서 지내기도 하였단다. 그는 종종 나의 집에 오랫동안 묵으며 가난한 집의 식량을 축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나의 우정은 경제적인 차이 때문에 구겨지거나 비뚤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의 구호를 보면,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함께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만약 자유만을 너무 주장하면, 평등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만약 평등만을 너무 주장하면, 자유가 약화되고 만다. 극단적인 경우에 자유와 평등은 서로 격렬하게 충돌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자유와 평등 사이에 박애가 들어서면, 이 둘은 상보 관계로 변할 수 있다.

만약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유도 살고 평등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인간 사랑을 빼 버린다면, 자유와 평등은 서로를 죽이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애(사랑, 우정)는 계급보다 더 우월한 가치가 있고,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계급은 짧지만, 우정은 길지 않은가!

인간의 심리는 무척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크게 보면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일평생 방황하거나, 한 쪽으로 고착되어 가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서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사람과 연령, 환경 등에 따라서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누구나 다 남에게서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비판(비난) 받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남의 칭찬만을 주로 듣다 보면, 우월감에 빠져 세상 사람을 내려다보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남의 비판만을 주로 듣다 보면,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칭찬하면서도 그가 우월감에 빠지지 않게 하고, 남을 비판하면서도 그가 열등감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만큼 매우 소중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지혜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면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자기 자신을 높이면서도 교만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만일 자기를 냉철히 판단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발전을 어떻게 도모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자기 자신을 먼저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신을 먼저 인정해 주겠는가? 그러므로 적절한 자긍심과 자기비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남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일평생 동안 인간의 소중한 임무가 될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 환경이나 외모 등에서 남달리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월감을 가질 턱이 없이 늘 열등감에 시달려 왔다. 다행히 내가 살던 달동네 마을에 그리 대단한 부잣집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난했던 게 나를 늘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비록 가난이 불편은 하지만 불행은 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한창 기를 펴서 성장해야 할 어린 나이에 가난함이란 늘 열등감의 뿌리가 되기 쉬웠다. 중학교 당시에는 나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몇 십리의 거리를 걸어 다닌 적이 있다. 쉬는 시간에는 매점에서 간식을 한 번도 사먹어 본 기억이 없다. 미술이나 공작을 위해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해 선생님에게 가끔 아픈 매를 맞거나, 친구의 활동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도 더러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내게 열등감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영양 섭취가 불량하다 보니, 나의 성장 발육은 매우 늦은 편이었다. 키는 그리 작다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몸은 그야말로 꼬챙이와 같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나의 허약 체질이 열등감을 심어 주었다. 우람한 신체는 갖지 못할지언정, 남들처럼 가끔 운동 시합에도 빠지지 않는 그런 남자가 되지 못한 게 늘 서운했다.

가난함과 허약함이 심어 준 열등감은 나의 성격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래서 내면적으로 깊이 사고하고 책을 즐겨 읽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시와 수필, 때로는 소설도 써 보고, 많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인생과 세계에 대한 간접 체험을 넓혔다. 이런 생활은 나의 성격만이 아니라 인생관에 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오늘의 나를 만든 열등감은 도리어 정신적인 성장의 힘이 되었고, 나의 자긍심의 뿌리가 되어 주었다.

슬픔도 때로는 힘이 된다고 한다. 큰 슬픔을 겪다 보면, 작은 슬픔은 대수로이 여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러므로 슬픔을 자주 겪는 사람이 슬픔을 전혀 겪지 않는 사람보다 충격을 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래서 슬픔을 극복할 힘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슬픔은 기쁨을 추구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열등감도 때로는 성장의 유용한 밑거름이 된다. 비우지 않는 그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비움은 충만의 전제(前提)이다. 만약 우월감(교만)으로 발전하지만 않는다면, 열등감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적당히 있게 것이 더 낫다. 이왕 열등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떳떳하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열등감을 멋있게 선용해 보자. 그래서 먼 훗날에 열등감으로 인해 도리어 감사할 줄 아는 멋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열등감이 많은 청년들이여, 파이팅!

강원도 춘천 근처 가리산 자락의 깊고 험한 두메산골, 한 외딴 집에는 눈먼 노인 박광호 씨가 지금껏 벌을 키우고 농사하며 살고 있다. 그는 4살 때부터 눈이 멀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그가 바라본 것은 오직 파란 하늘과 하늘을 가르던 비행기뿐이었다. 그 밖에 그가 기억하는 밝은 세상은 전혀 없다. 일찍이 그는 어머니조차 잃고 홀아버지 아래서 자랐는데, 아버지조차 산림 벌채를 하다가 넘어지는 나무에 깔려 하반신 불수가 된 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눈먼 그가 아버지를 공양하며 살았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 덕분에 양봉을 하고 채소를 가꾸면서, 200만 원만 있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소망으로 열심히 일해 왔는데, 도시의 사람들이 눈먼 그의 꿀을 날치기해 가기도 하였단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200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는 바람에 아껴 모은 그 돈도 장례비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단다. 다시 몇 년 후에 그는 200만 원을 모아 병원을 찾았지만, 7년 전의 진료 상태와 달리 시신경이 완전히 죽어서 눈을 뜰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의사로부터 들었다.

이 일로 그는 3개월 이상을 절망과 탄식으로 보내었다. 혼자가 된 그에겐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었으며, 오로지 윙윙거리는 벌들만이 친구가 되어줄 뿐이었단다. 벌 밖에도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라디오였다. 라디오를 벗하며 방송을 듣다가,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처지를 수기로 엮어 방송국에 보내었다. 다행히 이 수기는 전국으로 방송되었는데, 어느 날 뜻밖에 한 처녀가 그 깊은 산골까지 그를 찾아왔다.

그녀는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를 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중에 이 방송을 듣고 이 남자의 아내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단다. 결국 혼사는 이루어졌고, 아내를 통해 새 눈을 얻은 그는 세 자녀까지 얻었다. 그런데 행복한 이 가정을 그 누가 시샘하였을까? 연년생으로 두 딸을 얻고 이어 막내아들을 낳던 아내는 하혈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년 몇 개월만의 행복도 이렇게 덧없이 물거품처럼 사그라졌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자식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홀로 장성하게 키웠단다. 자기 자신을 남에게 맡기면 기가 죽는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자식이 불에 대일까 봐, 3년 동안 더운 음식은 전혀 해먹지 않았단다. 강원도 산골의 다 스러져가는 오두막집의 겨울은 얼마나 혹독했을까? 눈이 멀쩡한 사람도 때로는 피투성이 자식을 버리거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데, 눈먼 홀몸으로 그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 다 건강하게 키웠을까?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그를 그토록 강인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절망 끝에 좌절하고 자살했을 법한 그에게 삶의 이유와 희망을 주었던 것은 무엇일까? 물론 지금은 자식들의 행복이겠지만, 옛날에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지 살고자 하는 욕망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 아닐까? 부모에 대한 사랑,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 벌과 나무와 꽃과 바람, 흙에 대한 사랑,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 말이다.

오늘날 경제 위기 때문에 가정과 세상을 버리는 자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눈먼 박광호 씨도 땅을 가꾸며 잘 사는데, 눈 뜬 우리들이 작은 일로 쉽게 좌절하다니 말이 되는가? 인생은 무엇인가? 괴로우나 즐거우나 엄숙하게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이보다 더욱 소중한 진리를 말하자면,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인생이 아닌가! 당신은 사랑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당신은 귀한 존재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나는 “상처를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는 속담이나 “훌륭한 사공은 맞바람조차 이용하여 앞으로 나간다.”는 속담을 자주 떠올린다. 지나간 이야기인데, 어느 날 내 생애에 큰 시련이 닥쳐왔을 때, 갑자기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나의 강의를 들은 한 여학생이 부쳐준 뜻밖의 편지였다. 여러 가지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한 가지 내용만은 결코 잊지 못한다. 그녀가 깨알과 같은 글씨로 써내려간 내용은 ‘지혜로 여는 아침’이라는 작은 책에서 인용한 것이었는데, 여기에 다시 옮겨본다. 제목은 ‘인생의 향기’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 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산업체들은 발칸 산맥의 장미를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인 자정 새벽 2시에 딴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미는 한 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향기도 가장 극심한 고통 중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합니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 본 사람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답니다.”

이 글을 읽은 나는 어느 새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한 줄기 물방울을 훔쳐 내렸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기쁨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내가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던 어느 제자의 진심어린 격려에 대한 감사였고, 생활의 지혜로부터 솟아나는 놀라운 기쁨이었다. 그 후부터 나는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반드시 고난을 극복하고 향기로운 인간이 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거듭 다지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여의고 외동딸을 정성껏 키운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딸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거푸 불행을 당하게 되었다. 불행은 꼬리를 물고 온다고 했던가! 그녀의 남편은 사업에 실패하자 그녀를 떠나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실의에 빠져 있는 동안 소중한 자녀마저 교통사고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삶의 희망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 이제는 자살할 일만 남았다.

딸의 성격을 잘 아는 아버지는 딸이 곧 자살할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딸을 위해 해 줄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그는 마지막으로 딸을 식사에 초청하기로 결심했다. 딸은 죽기 전에 아버지가 식사라도 한번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곧 세상을 떠날 터인데 아버지의 식사 초대마저 거부할 이유가 있겠는가! 딸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아버지도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오직 잠잠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날은 아버지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소박한 음식을 내어놓았다. 삶은 달걀과 삶은 당근, 그리고 따끈한 커피가 전부였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딸에게 물었다. “애야, 이 세 가지 음식 중에 너의 운명과 닮은 것은 무엇이냐?”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딸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자살할 마음을 거두었고, 열심히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그토록 바꿔 놓았던 것일까? 아버지의 뜻을 읽었던 것이다.

달걀은 깨지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뜨거운 물에 들어간 달걀은 단단해져 나온다. 당근은 딱딱해서 먹기가 어렵다. 그러나 뜨거운 물에 들어간 당근은 먹기 좋게 부드러워진다. 커피 알맹이는 먹기가 힘들고 맛도 쓰다. 그러나 잘게 부서지고 뜨거운 물에 들어간 커피 가루는 매우 향기로운 차로 변신한다.

딸이 어떤 것을 자신의 운명과 빗대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고난이 인생을 파멸로만 몰아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확신하였을 것이다. 고난은 인간을 슬프게 만들고, 때로는 좌절하게도 만든다. 그러나 고난은 연약한 인간을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난은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더욱이 고난은 인간을 향기롭게도 만든다. 고난에 굴복하지만 않는다면, 이처럼 고난은 때때로 인간을 매우 유익케 한다.

이왕 고난을 피해갈 수 없다면,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고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 고난 때문에 더 크게 성공하고, 고난 때문에 더 아름답게 산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는가!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자! 인생은 어차피 생각하기 나름이고, 인생은 부단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고난도 마음을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멋있게 요리할 수 있고, 그래서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의 한 연구팀이 열다섯 살이 된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생각하여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보았다고 한다. 온갖 방법으로 침팬지의 관심을 끌면서 말을 가르쳤더니, 침팬지가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나를 놓아 달라, 자유를 달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잘 먹이고 아무리 좋은 여건을 준다고 해도, 침팬지는 우리 안에 갇혀서 살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동물도 자유를 가장 귀하게 여기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얼마나 더욱 그리하겠는가!

중국의 고전 예기(禮記)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가 태산 옆을 지나갈 때, 한 여인이 무덤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공자가 그 이유를 묻자,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산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처음에는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내 남편이 그랬고, 오늘은 내 아들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가 “그렇다면 왜 진작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비록 호랑이 때문에 무서운 곳이지만, 가혹한 정치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주저앉고 살아갑니다.” 그 말에 공자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만약 사람에게 자유가 없다면, 사람은 죽은 상태와 다름이 없다. 일제 치하 36년 동안 우리 백성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런 삶은 죽은 삶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자유를 위해 싸워온 수많은 사람들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자유를 누리고 있는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만큼 행복하지는 않은 듯이 보인다. 왜 그런가? 사람을 속박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기는 했지만, 이제는 자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 자유” 하고 외치면서 자유를 얻으면 마치 모든 것을 얻을 것처럼 생각하였지만, 막상 자유를 얻고 난 다음에는 자유가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맺어오던 모든 연대감, 소속감을 마치 자신을 구속하는 쇠사슬인 양 모두 끊어버린 현대인은 이제 자유의 현기증과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유의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유가 최고의 목표일 수는 없다. 자유는 그 무엇으로 채워야 할 빈 공간일 따름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컵 안에 가득 찬 물을 마시거나 쏟아 버린다면, 컵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가? 아니다. 물이 나간 틈으로 공기가 밀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처럼 사람이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자유 속으로 오히려 더 나쁜 것이 들어올 수도 있다.

어떤 탐험가가 외국 여행 중에 새 몇 마리를 선물로 받아서, 배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새들을 새장에 가두어 놓았는데, 새들이 새장이 얼마나 답답한지 자꾸만 나가려고 하였다. 그래서 머리를 문에 박기도 하고, 몸부림을 치곤하였다. 탐험가가 이 장면을 보다가 너무나 애처로워서 새를 놓아주었다. 그랬더니 새는 자유를 찾은 기쁨에 겨워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탐험가는 곧 그 새들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 새들이 다시 돌아왔다. 새들이 얼마나 지쳤는지, 사방을 다니다가 돌아온 것 같았다. 힘이 지쳐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새는 쓰러져 있었다.

가만히 보니, 새들이 자유를 얻기는 하였지만, 앉을 데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들은 하는 수 없이 배로 되돌아왔고, 그래서 탐험가는 새들을 다시 새장 안에 가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자유를 찾는 것은 어렵고 중요하지만, 자유를 지키고 누리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20세기의 독일의 유명한 심리학자 에릭 프롬(E. Fromm)은 자유를 쟁취한 현대인이 이제는 도리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심리를 탁월하게 분석한 적이 있다. 자유에 현기증을 느끼고 자유가 부담스러워진 현대인은 나치즘과 같은 권위주의로 도피하거나, 테러와 폭력과 같은 파괴적인 삶으로 치닫거나, 세상의 유행에 순응하는 자동인형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유는 이제 “그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그 무엇을 위한 자유”가 되어야 한다.

자유가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라면, 자유는 이기적인 욕심과 방탕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 힘겹게 쟁취한 자유를 남에게 송두리째 뺏길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는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중한 자유를 지키고 누리기 위해서 때때로 우리는 소중한 자유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소중한 자유를 찾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였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때로는 자유를 희생할 줄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이타적인 존재인가? 만약 인간이 이타적이라면, 얼마나 이타적일 수가 있겠는가? 인간의 이타심도 결국에는 이기심의 한 발로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곤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행위의 동기조차 잘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많은 성현들과 학자들이 이런저런 답변을 주어왔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 인간의 본질이나 성격에 대한 이론은 주로 유전자 연구에 의해 크게 지배를 받고 있다.

오늘날 유전자 연구는 대개 생명과 질병의 현상을 규명하려는 데 집중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도 이해되고 있다. 최근에 이와 관련된 책 한권이 발간되었는데, 리처드 도킨스(R. Dawkins)가 쓴『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 1993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 주장에 의하면 사람과 모든 동물은 이기적인 유전자들을 맹목적으로 보존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기계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불멸(영원)하고, 이기적이다.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된 모든 것은 이기적이다. 이타주의로 보이는 행위도 실제로는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유전자의 수준에서 이타주의는 악(惡)이고, 이기주의는 선(善)이다. 이와 같은 주장들로 인해 도킨스는 사회생물학과 진화 논쟁에서 중심적이고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에 그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책이 발간되었다. 바로 매트 리들리(M. Ridley)가 쓴『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라는 책이다.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한 후부터 재능 있는 과학 저술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붉은 여왕』을 쓴 것을 계기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게놈』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였다. “인류는 본성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인가, 아니면 반사회적인 동물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인간 사회의 뿌리를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선배들의 이론이 절반만 옳았음을, 즉 인간 사회의 뿌리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즉 문자 그대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이타적 유전자』에서 그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정신은 이기적인 유전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성과 협동성, 신뢰성을 지향한다. 인간은 사회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이타주의의 이면에는 분명히 이기성이 숨어 있다. 사랑과 상호부조의 내밀한 성소(聖所)인 자궁에서조차 냉혹한 이기적인 관계가 발견된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협동, 이타적 행위, 아량, 동정, 친절, 자기희생 등과 같은 미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모든 인종의 공통적인 심리적 경향이다. 인간은 개미와 꿀벌보다 더 상호의존적이다. 그러므로 호혜주의는 인간 본성의 불가결한 일부, 즉 본능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 사회에서는 호혜주의가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사회적 이타주의에 관한 한, 인간은 아주 독보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가장 큰 이점은 노동 분화이다. 이것은 인간을 다른 사회적 동물과 구별하는 특징이다. 인간의 면역 체계를 보더라도, 이기적인 세포도 결과적으로는 인체 전체의 이익을 지향한다. 인생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다. 나의 성공이 반드시 너의 희생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둘 다 승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 외에 어떤 영장류도 남편과 아내의 노동 분화를 하지 않았다. 우리의 언어와 생활은 온통 호혜주의적인 관념으로 가득하다. 인간에게는 호의와 호의에 대한 상대방의 보답을 감시하는 본능이 있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의 뇌보다 뛰어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르다. 인간의 뇌에는 호혜주의를 구사하여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동물에게는 감정 이입이 없다. 하지만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신뢰도를 높이는 구속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정을 활용한다. 인간의 감정은 사회 속에서 신뢰가 유지될 수 있게 해주고 헌신성을 보장하는 정신적 도구이다. 감정은 인간이 서로 호혜성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정교한 도구이다.

그 밖에도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는 것은 문화이다. 의례는 협동과 희생을 고양하는 기능이 있다. 음악은 감동과 정서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음악은 집단에 대한 헌신성을 과시한다. 상호 이익을 위한 교역은 오랜 옛날부터 인간다움의 조건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생태학적인 장점이다. 집단 간에 비교우위의 법칙을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태학적인 비장의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므로 도킨스와 리들리 중에서 누가 더 옳은지를 판단할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단순한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사람은 자기 성격과 취향과 소원대로 만사를 바라볼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도킨스는 유전자의 이기적인 특징을 더 즐겨 보고 싶었을 것이고, 리들리는 그와는 정반대로 유전자의 이타적 특징을 더 즐겨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에게는 만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리 보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기적인 요소도 생각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타적으로 보일 수 있고, 거꾸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나아가 만물의 상극적(相剋的) 요소들도 더 높은 차원에서는 실로 긴밀하게 상생(相生)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기적인 것이 곧 이타적인 것이 될 것이고, 이타적인 것도 곧 이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자연과 조물주는 인간이 꿈꾸는 대로 되어가도록 상당한 자유와 가능성을 허락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인간의 탐욕을 무한히 허락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탁월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요소들은 불행히도 생태학적으로는 혹독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북아메리카에 인간이 출현한 다음에 대형 포유동물의 73%가 사라졌다고 한다. 인간들끼리는 협동적으로 발전해 온 인간이 왜 유독 환경에 대해서만은 이다지도 이기적일까? 저자의 결론대로 인류에게는 환경 윤리와 같은 것, 즉 자제의 습관을 계발하고 가르치는 내재적인 경향이 없고, 따라서 환경 윤리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스르면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용기를 권한다. <게임 이론>을 통해 검증해 본 결과로 인간은 비열한 전략보다는 우호적인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론들과 자료들을 동원하여, 그리고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풍성히 곁들어, 매우 어려운 이론을 아주 쉽게, 그리고 매우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 저자의 혜안이 놀랍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더 넓은 안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듯이, 세상도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억울함을 느낀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공평한 세상이 오기를 막연히 꿈꾸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세상이 반드시 불공평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 24시간을 산다. 그리고 죽음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공평한 세상을 탓하는 우리도 종종 위로를 받곤 한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시간도 결코 공평한 것이 아니다. 시간도 사람이 활용하기 나름이다. 똑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시간을 똑같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자신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큰 보답을 안겨주지만, 자신을 어리석게 낭비하는 사람에게는 큰 손해를 안겨준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대개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시간은 황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소중한 시간을 멍청히 보내거나 세월을 허송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크게 보면, 이런 짓도 자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간은 곧 목숨과 같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1849년에 사회주의 혁명단체에 가입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영하 50도가 되는 추운 날씨에 그는 사형장 기둥에 묶이게 되었다. 마치 골고다의 예수처럼 그의 좌우에는 두 사람이 함께 묶여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이었다. 5분만 지나면, 그는 이 세상을 영원히 하직하게 된다. 28년을 살아 왔지만, 지금처럼 시간이 아깝고 귀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5분을 어떻게 쓸까 하고 고민하던 끝에 다음과 같이 시간을 쓰기로 했다. “형장에 같이 끌려온 사람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한 마디씩 하는 데 2분을 쓰고,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을 정리하는 데 2분을 쓰고, 나머지 1분은 대지와 자연을 한 번 둘러보는 데 쓰자.” 이렇게 생각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곁에 묶여 있는 두 사람에게 최후의 인사를 했고, 그리고 잠깐 가족을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벌써 2분이 지나가 버렸다.

이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데, 문득 “3분 후에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해졌다. 28년이라는 세월을 한 순간 한 순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이제 다시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순간마다 값있게 쓰련만...!”하고 뇌까렸지만, 그럴수록 가슴만 더 아파올 뿐이었다. 그러자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철커덕’하고 들려 왔고, 이와 동시에 견딜 수 없는 죽음이 공포가 밀려 왔다. “내 생명이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그 순간에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리면서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형을 중지하라!”는 황제의 특명을 받고 온 것이다. 그 후로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 동안의 시베리아 유형생활과 5년 동안의 사병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1859년에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그는 사형의 순간에 느꼈던 시간의 소중함을 일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활용함으로써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에 마음을 쓴다.” 존슨(S. Johnson)도 이렇게 말했다.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 한층 짧아진다.” 마지막으로 토마스 칼라일(T. Carlyle)의 시 한 편을 감상하기로 하자.

얼마 전에 나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슬픈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어떤 중년 남자가 외동딸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하였다가, 딸은 결국 죽고 자신은 죽지 않은 채로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소식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는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던 중에 부인과 사별하였다. 그리고 격무로 힘이 들고 승진도 누락된다는 이유로 그는 곧 이어 사표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양평동 옥탑 방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고교 시절에 수재라는 칭찬을 들으며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던 딸도 직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해서 팀장까지 맡았지만, 큰 자리에서 연거푸 밀려나자 퇴직을 결심하였다. 그녀가 퇴직금으로 받은 돈은 5천만 원이었다. 퇴직한 뒤에도 취업이 되지 않자, 그녀는 아버지에게 앞으로 1년간 10억 원을 벌지 못하면 삶의 희망이 없다면서, 10억 원을 못 벌면 같이 죽자고 제안하였다. 부녀는 퇴직금을 절반으로 나눠서 반은 주식에 투자하고, 나머지 반은 로또 복권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주가는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인생역전을 기대했던 로또 복권도 무려 2천만 원 가량을 샀지만, 150만 원 내외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3등에 2번 밖에 당첨되지 못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1년 만에 5천만 원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부녀는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어 목숨을 끊기로 했다. “이제 저 세상으로 갈 때가 돼서 간다.”는 내용의 유서를 써놓은 후, 딸이 먼저 목숨을 끊으면 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한 다음에 뒤따라 죽으려고 마음을 먹고, 딸이 먼저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딸의 뒤를 이어 아버지도 죽을 만큼 많은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지만, 마침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영등포 경찰서는 그를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단번에 일확천금을 얻으려다 실패하자, 결국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처럼 많은 돈을 가지면 인생이 참으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정하고, 많은 돈을 버는 일에 최대한 열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겨우 하루하루를 연명해 간다. 하지만 소수의 부자들도 참으로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1998년에 런던 정경대학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 가장 행복한가?”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어이가 없게도 방글라데시와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가 1, 2,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 후에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인생 상담가 코언(Cohen) 씨가 2002년에 발표한 행복 공식(행복지수)에서도 방글라데시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사람들은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로 사람들은 더 좋은 여건에 금방 적응해 버리기 때문에 행복감이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예컨대, 더운 여름에 부채만 있을 때에는 선풍기만 있어도 사람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선풍기를 갖고 난 다음에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에어컨을 갖게 되어도, 사람들은 또 다시 더 좋은 조건을 바라기 때문에 행복감은 금방 사라진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두 번째 이유는 소득 수준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버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가 실시된 적이 있었다. “남들이 2만 달러를 받을 때에 내가 5만 달러를 받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남들이 20만 달러를 받을 때에 내가 10만 달러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은가?”라고 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남이야 얼마를 받든, 내가 5만 달러보다는 10만 달러를 받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록 작게 받아도 남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 더 좋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선진국 사람들이 잘 살면서도 후진국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물질적 만족에는 한이 없기 때문이고, 항상 남과 비교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자살하는 사람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더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인 물질에 매여 사는 한, 사람들은 영원히 행복할 수가 없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 『꾸뻬 씨의 행복여행』(프랑수아 클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오래된 미래)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은 파리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꾸뻬 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의 진료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한 사람들로 넘쳤다. 그 자신도 자신의 직업과 결혼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을 찾아서 여행을 떠났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작은 수첩을 하나 들고 여행하다가, 깨달음이 올 때마다 수첩에 적었다. 엄마를 찾아 떠나는 동화 속의 소년처럼 꾸뻬 씨는 단순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여행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런 질문에 남자들은 웃지만, 여자들은 울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동양의 창녀를 사랑해 버리기도 하고, 스승을 찾기도 하였다.

꾸뻬 씨가 수첩에 써넣은 글귀들은 대충 다음과 같은 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내 집 한 칸과 채소밭을 갈 수 있는 소박한 삶에 있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는 데서 온다.” 그리고 꾸뻬 씨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엽서를 보냈다. “춤춰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이처럼 행복이 저 멀리 있거나 더 좋은 환경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실망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므로 동서양의 많은 스승들은 멀리서 행복을 찾지 말고 가까운 데서, 지금 여기서 행복을 찾을 것을 가르친다. 행복은 지금 여기서 마음을 먹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인종적, 지리적으로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이다. 하지만 심리적, 문화적으로 일본은 우리와 가장 먼 나라이다. 한류 열풍으로 가까워지는 듯싶던 일본이 독도 문제로 인해 다시금 매우 멀어졌다. 독도 문제가 일본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 혹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점도 없지는 않지만, 일본인과는 달리 감정적으로 잘 흥분하는 탓인지는 잘 몰라도, 일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린 느낌이다.

안방극장에서 방영된 드라마 ‘토지’와 ‘불멸의 이순신’을 본 다음에 나는 일본(인)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식민시대에 관한 정보를 제외하면,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거의 무지하다시피 하다. 우리의 일본 이해는 고작『축소지향의 일본인』(이어령) 정도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싶다. 그 밖의 일본 이해는 기껏해야 저널리스트가 쓴 에세이 수준의 책들(『일본은 없다』혹은『일본은 있다』)을 통해 형성된, 그야말로 아마추어 수준의 것이었다. 아마도 한국을 연구하는 일본인이 수백 명을 넘는다면, 일본을 연구하는 한국인은 수십 명도 정도일 것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우리가 일본을 이해하기는커녕 과연 극복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순신이 해전에서 거둔 연전연승의 비결이 무엇인가? 일본 수군보다 더 막강한 조선 수군의 화력이 가장 큰 비결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과 탁월한 전술도 큰 힘을 발휘했을 법하다. 전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는 오랫동안 일본 정보를 자세히 수집하고 있었고, 전란 중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아직도 그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최근에 이원복 교수가『먼 나라 이웃 나라』시리즈에서 2권에 걸쳐 일본을 상세히 소개한 점이다. 비록 만화의 형태이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이 책을 위해 12년 동안이나 준비했고, 일본을 40차례 이상 여행했으며, 일본인 교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이해를 돕는 점에서 아마도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은 당분간 나오지 않으리라고 본다. 제1권은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다루지만, 상당한 분량을 일본의 경제적 성공과 고민에 할애한다. 제2권은 일본의 역사를 다루는데, 지루할 정도로 상세하게 역사를 나열한다. 하지만 역사와 의식은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관련성을 지니기 때문에 두 책은 연계성을 갖는다.

일본에 대한 지정학적 설명은 논리적, 역사적으로 가장 큰 호소력과 설득력을 주며, 그래서 내용 설명에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섬이라는 특수성이야말로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잣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은 여러 면에서 영국과 매우 흡사한 특징을 갖는다. 아직도 왕을 두고 있다거나, 유혈혁명을 겪은 적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공통점이다.

특히 섬나라 일본의 특징은 조화(調和)라고 한다. 사방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싸우면 결국 모두가 망하게 되므로 신성불가침적인 하늘 신(천황)을 모셔놓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려고 힘쓴다. 하지만 질서를 유지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붓과 글을 무기로 삼은 선비문화가 발달한 조선사회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칼을 사용한 무사 중심의 사회가 발달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천황을 상징적인 존재로 삼고 막부(幕府)가 실질권력을 장악해 왔던 것도 바로 화(和)의 정신 때문이다. 이와 같은 화(和) 사상은 철저한 신분사회 혹은 계급사회를 만들었고, 분수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일본의 경제적 성공과 일본인의 이중적 성격은 바로 이로부터 비롯한다.

지정학적 설명은 한 민족의 의식과 역사를 설명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생명의 역사를 보더라도, 환경의 중요성은 지대하다. 더욱이 인간 생명에게 환경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대한 중국 대륙의 사람들은 확실히 배포가 크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잘 흡수한다. 반도(半島)에서 사는 우리 민족은 솔직히 주체성이 약하고 사대적 근성이 강한 편이다. 오랫동안 고립된 섬나라 일본은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섬나라는 폐쇄적이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섬나라 일본이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폐쇄성을 잘 극복하고 다른 나라의 뛰어난 문화를 부단히 수용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비록 문명의 출발은 늦었지만, 일본은 대륙(백제와 중국)과 대양(미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비극도 바로 이로부터 비롯한다. 일본은 힘을 가질 때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하려는 제국주의적 본성을 자주 드러내었다. 섬나라의 열등감 때문이든, 자국의 문제를 대외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술책이든, 일본은 남의 은혜를 침략으로 갚으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이 된 일본은 문화적으로는 열등 민족이 아닐 수 없다.

경제와 기술을 제외하면, 사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크게 배울 점이 별로 없다. 일본인의 종교적 특징은 다종교적, 혼합적이다. 일본인의 문화적 특징은 모방적이고, 그래서 창조적이지 못하다. 일본의 철학에 대해서는 내가 들은 바는 별로, 아니 전혀 없다. 더욱이 일본의 도덕적 수준은 한참 떨어진다.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뉘우치는 독일인과는 달리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칠 줄을 모르는 일본인은 참으로 한심 그 자체이다. 이런 일본이 유엔의 상임 이사국으로 진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참으로 벼락부자의 정신적 미성숙함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일본이 없다”는 소리만큼 정신이 나간 소리도 없으리라. 우리가 일본의 침략을 또 다시 받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균형 세력 혹은 지도 세력으로 부상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