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후기

 

이 책은 튀빙엔에서 부족한 본인을 자상하게 지도해 주었던 존경하는 스승 몰트만 교수가 오래 전에 번역을 의뢰한 책 'Wer ist Christus fü uns heute?'를 옮긴 것이다. 그분은 이 책보다 먼저 논문집 'In der Geschichte des dreieinigen Gottes'를 보내어 번역을 부탁하였으나, 부피와 내용 면에서 더 수월한 앞의 책을 먼저 번역하였다. 이 책도 이미 번역을 끝내어 기독교서회에 넘겼고,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歷史)'라는 제목으로 곧 출판될 예정이다. 이로써 본인은 스승의 은혜에 어느 정도 보답한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 책은 몰트만의 저서 '그리스도의 길'과 사상적으로 일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평신도나 신학생들이 읽기 쉽도록 평이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 책은 '희망의 신학'에 의해 대변된 종말론적 신학,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 의해 대변된 십자가의 신학, 그리고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에 의해 대변된 생태학적 신학 그리고 '유대인과의 대화'에서 얻은 신학적 결론 등을 쉽게 섭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부분, 즉 '그리스도의 불안과 고문당한 그리스도'를 첨가하고 있다. 이로써 몰트만은 죽은 과거의 교리적 그리스도가 아닌, 오늘 우리에게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더욱 생생하게 소개하려고 애쓴다. 이전에 본회퍼가 인간과 인종을 파괴하던 독일 제3제국의 상황에서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를 추구했듯이, 지금 몰트만은 인권과 자연을 파괴하는 현 시대에서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를 추구한다. 오늘 우리에게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실감있게 전달하기 위하여 몰트만은 이 책에서 다른 곳에서보다 더 생생하게 자신의 실존적 경험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에게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그리스도로 다가오게 하려고 애쓴다.

오늘 날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고백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백이라는 것도 매우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다. 이런 형편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생활은 활력과 특징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와 함께 교회는 더욱 세속의 급류 속에서 표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럴수록 교회는 세속적인 인기주의와 성공철학에서 과감히 탈출할 용기를 가져야 하며, 신앙의 근원이요 목표인 그리스도를 새롭게 붙잡도록, 아니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붙잡히도록 힘써 노력해야 한다.

인기를 잃는 것은 적게 잃는 것이다. 목회나 사업에서 실패하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몰트만에 대한 성급한 판단과 편견 버린다면, 비록 작은 책이나마 이 책은 오늘 우리에게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새롭게 경험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부족한 번역술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이해와 채찍을 부탁드린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수고하신 서진한 목사님과 직원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드리고 싶다.

1996년 12월 2일 역자 이신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