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세계 본회퍼 학회를 다녀와서

 

김성호 목사(부산 믿음의 교회 담임(기성), 서울신학대학교 시간강사)

 

세계 본회퍼 학회가 지난 7월6일부터 7월10일까지 4박 5일간 스위스 바젤에서 열렸다. 세계 본회퍼 학회는 1971년 독일 카이저스베르트(Kaiserswerth)에서 처음 개최된 이래 매년 4년마다 개최되었으며 이번이 12번째였다. 나는 올해 1월에 이미 학회 참석을 위해 등록을 하고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이번 학회에는 총 21개국 220명의 회원들이 참가하였다. 7월 6일 바젤 시내에 있는 미션21(Mission21)에서 개최된 이번 학회의 주제는 ‘지구화 시대의 본회퍼(Engaging Bonhoeffer in a Global Era)였다. 이날 저녁 6시 세계 본회퍼 학회장이자 취리히 대학교수인 크리스티아네 티츠(Prof. Dr. Chrisitane Tietz)의 모두발언이 있었다. 이번 학회는 본회퍼의 신학이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논의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동시에 본회퍼 당시의 상황이 지구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재의 상황과의 많은 차이가 있는 현실 속에서, 과연 본회퍼의 신학이 지구화 시대에 어떻게 해석되고 수용될 수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이번 학회는 기독교적 신앙(7월7일), 기독교적 증거(7월8일), 기독교적 섬김(7월9일)이라는 3가지 소주제로 다시 나눠져 진행되었다.
티츠 교수의 모두 발언 후에 이어진 강연의 주제는 바젤의 개혁교회 목사인 크리스토프 람스타인(Christopf Ramstein) 박사의 ‘본회퍼와 바젤 출신 목사들과의 관계’(Bonhoeffer und seine Beziehung zu Basler Pfarrern)’였다. 그는 바젤의 개혁교회 출신 목사들의 본회퍼의 수용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본회퍼가 루터교 전통에서 머무르지 않았으며, 때로는 개혁교회의 입장을 수용했다고 말하면서, 그가 소개한 4명의 개혁교회 목사들이 본회퍼의 신학을 어떻게 수용했는지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람스타인의 목사의 강연 후에는 빌드쉐 하우스(Wildt’sche Haus)에서 이번 학회에 참석한 회원들을 환영하는 만찬이 있었다.
2012년 제11회 스웨덴 시그투나에서 개최된 세계 본회퍼학회 때 참석한 회원은 150여명이었지만 이번 학회의 참석자는 4년전보다 참석자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이는 세계 본회퍼 학회 임원들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전 세계 속에서 본회퍼의 삶과 신학이 더 많이 소개되고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 날 환영 만찬의 모습은 이틀 후 7월8일자 바젤신문(Basler Zeitung)에 실려 이번 학회의 목적과 주제가 소개되기도 했다.
학회 둘째 날인 7월7일의 소주제는 ‘기독교적 신앙’이었다. 오전 8시45분의 경건회 후 9시부터 미국 템퍼(Tampa)의 마이클 데정(Michael DeJonge)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그는 ‘한번 더, 칼 바르트와 본회퍼의 유한은 무한을 수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하여(‘once more, Barth and Bonhoeffer on Whether the Finite can bear the Infinite)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어나갔다. 그는 우선 개혁교회와 루터교회의 전통 속에서의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을 시도한 후 개혁교회 전통에 서 있는 칼 바르트와 루터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 본회퍼의 하나님의 인식론에 관해 비교했다. 그의 강연은 두 신학 거장의 하나님의 이해의 비교에 그치지 않았고, 유한한 인간이 과연 무한하신 하나님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반성과 성찰을 심도 있게 논했으며, 이 문제에 관해 참석자들의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 냈다.
이 후 영국의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의 강연이 이어졌다. 그는 본회퍼의 그리스도 이해, 특히 본회퍼의 그리스도의 몸 이해를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정치적인 지형 하에 변형(Transformation)을 시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 하였다. 그는 본회퍼가 20세기 이후 정치적으로 회의감을 품고 있는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하였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치적 의무감을 심어 주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본회퍼의 책임 개념은 평화와 인권의 문제로 정치적인 영역에서 변형시켜 적용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회퍼의 그리스도 이해가 세속화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길로 안내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날(7월7일) 점식식사 후에 오후 2시 15분부터 6시까지는 8개의 소그룹 강연이 진행되었다. 총 세 번의 강의는 각각 한 시간씩 진행 되었다. 내가 참석한 존 매튜(John W. Matthews)의 강의는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이 다양한 종교들이 상존하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논의 하였다. 그는 본회퍼가 로마, 아프리카, 미국 등에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경험을 하였지만, 유대교의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지는 않았으며, ‘타자(other)’문제를 다루었지만 그리스도론에 지나친 집중을 했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본회퍼의 전형적인 신학방법인 ‘모순의 방법’ 중에 구체적으로 단지(Only)와 모든 것(everything)이 포함된 문장들을 비교하면서, 때로는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에 집중된 신학적 성향이 오늘날 현실 속에서의 타자와의 논의를 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본회퍼가 인류의 미래에 관해 심도 있게 다루기는 했지만, 본회퍼 당시의 전체주의와 오늘날의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열광주의가 존재하는 현실은 다르기 때문에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을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본회퍼의 타자개념을 기독교 신앙의 본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순례, 환대, 개방, 조우와 같은 개념을 촉발시키는 개념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역설 했다.
나는 7월 7일 오후 3시 45분부터 시작된 강의들 중에 페터 찜멀링(Peter Zimmerling) 교수의 강의에 참석했다. 그는 토마스 아 켐피스와 본회퍼의 제자도 이해를 비교했다. 그에 의하면 본회퍼는 토마스 아 켐피스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다루는 제자도에 영향을 받았다. 찜멀링은 본회퍼가 토마스 아 켐피스의 ‘Imitatio Christi’ 개념을 ‘내적인 영성’만을 의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으며,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외적인 영성’ 개념으로 발전시켜 이해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본회퍼가 핑켄발데 신학교에 교장으로 있던 시절 23명의 신학생들에게 이러한 이해를 배경으로 영성훈련을 실시하였으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덧입어 실존적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핑켄발대 신학교의 학생이었던 베트게는 본회퍼가 1943년 4월 5일에 체포된 이후 감옥에 있을 때, 이러한 외적인 영성을 가르쳤던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으며, 이 편지가 본회퍼를 감옥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역할을 했으며, 수감 동료들을 위해 예배를 드리고 전심으로 중보기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학회 셋째날인 7월 8일의 소주제는 ‘기독교적 증거’였다. 이날 오전 첫 번째 강의의 주제는 울리히 퀘르트너(Ulrich H.J. Koertner) 교수의 ‘다양성과 의무, 다양한 상황 속에서의 그리스도 존재’였다. 그는 오늘날의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본회퍼의 신학개념을 인용하며 논의했다. 그는 본회퍼의 신학은 규범화 되지 않고, 늘 두 가지 상반되는 입장들의 경계선상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다양한 대결적 입장들이 상충하는 지구화 시대에 그의 신학 속에서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르게 살아 갈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7월8일 오전 두 번째 강의는 본회퍼의 신학이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에 정의와 자유개념에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부르그에서 온 푸렝 렝카불라(Prof. Dr. Puleng LenkaBula) 교수는 본회퍼의 윤리개념이 아프리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소개했다. 특히 본회퍼의 진리(Wahrheit)개념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역사적 관점뿐만 아니라 믿음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결과는 본회퍼 전문가인 존 데 그루키(John de Gruchy)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렝카불라 교수는 그의 연구를 통해 소개된 본회퍼의 삶과 신학이 부정의가 가득했던 아프리카의 상황 속에서,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기독교적 증거가 되었으며, 특히 본회퍼의 기독교윤리 사상은 아프리카에 흑인신학과 사회적, 경제적, 인간학적 사회학적 신학에서 논의 되어, 그리스도인의 의무, 정의, 자유, 여성의 인권의 문제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나는 7월8일 오후 강연에 참석하는 대신 ‘칼 바르트 아키브(Karl Barth Archiv)’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바젤에 위치한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생가(Pilgerstrasse 25, CH-4055 Basel)를 방문했다. 이 곳 1층에는 바르트의 시간과 함께 했을 100년이 넘은 시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으며, 2층에는 바르트가 사용했던 1700년대 이후의 신학저서들의 내음이 가득했다. 그는 이곳에서 잠든 사이에 생을 마감했고, 개혁교회 전통에 서 있는 ‘신정통주의 신학’이라는 유산을 전 세계에 남겼다. 그의 삶과 했던 바젤에 있는 이 작은 집으로 20세기 신학의 거장의 삶과 신학을 회상하고자 하는 전 세계의 많은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학회 넷째 날인 7월9일의 소주제는 ‘기독교적 섬김’이었다.
오전 첫 번째 강의의 주제는 영국의 에스더 리드(Prof. Esther Reed) 교수의 ‘디트리히 본회퍼와 세계 공공윤리의 책임의 제한’이었다. 그녀는 오늘날의 책임 개념이 너무나도 직접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개념으로 전락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이 지구화 시대에도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들이 상존하지만 분명히 그 문제들의 해결책 역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책임과 행위 문제, 책임과 존재문제, 공공 윤리적 함의에 대해 논의한 후, 과연 지구적 ‘성도의 교제’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본회퍼의 교수 자격논문인 『행위와 존재(Akt und Sein)』 에서의 ‘행위’와 ‘존재’ 개념을 책임의 지평에서 재해석했고, 그리스도인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행위와 존재, 가능태와 현실태의 경계선상에서 짊어여야 하는 책임의 근거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본회퍼의 대리(Stellvertretung)사상과 위임(Mandat) 사상에서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결론에서, 지구상의 ‘성도의 교제’는 본회퍼의 성만찬(Abendmahl)이해의 확장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7월9일 오전 두 번째 강의에서는 르완다에서 온 파스칼 바타링가야(Pascal Bataringaya) 박사가 르완다학살 이후 화해개념을 본회퍼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1994년에 100만여 명의 르완다 국민들이 학살당했다. 본회퍼의 ‘타자를 위한 교회’ 개념과 ‘평화’이해가 르완다의 정치가와 국민간의 대화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상처 입힌 행위자들과 르완다 국민들간의 화해를 위한 평화 조성의 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오전 강의가 끝날 때 마다 총 6개국에서 온 본회퍼 전공자들의 각국의 본회퍼 연구 현황에 대해 소개했는데, 나는 바타링가야의 강의 후 한국에서의 본회퍼 현황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내가 학회 넷째 날(7월9일) 오후 참석했던 강연들 중에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페르디난츠 슐링엔지펜(Ferninad Schlingensiepen)의 강연이었다. 그는 본회퍼의 전기는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쓰여 져야 하며, 에릭 메택시스(Eric Metaxas)나 찰스 마쉬(Scarles Marsh)가 집필한 본회퍼의 전기는 책을 팔아 엄청난 수익을 남기려고 하는 자본주의 타락한 이면을 담은 결과물이라고 꼬집어 비판했다.

학회 마지막 날 (7월10일) 주일 오전 10시에는 라인 강변의 뮌스터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 날 예배 중에는 지구화 시대에 세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타자를 위해 함께 중보기도가 있었으며, 21개국에서 모인 회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청하시는 성만찬에 함께 참여했다. 이어 학회 참석자들은 남아공 스텔렌보스(Stellenbosch)에서 개최되는 제13회 본회퍼 학회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쉬움 속에 헤어졌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1945년 4월9일 사형 당하기 전 그와 절친한 관계 였던 조지 벨 목사에게 전해달라고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본회퍼의 삶과 신학은 70년 전에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삶과 신학에 관한 연구들이 계속 진행되어 왔고, 다양한 정치, 문화, 사회적 배경들이 얽혀있는 오늘날의 지구화 시대 속에서도, 그의 삶과 신학이 계속 연구되고, 수용되고, 적용되는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타자를 위한 교회’의 형태로 늘 새롭게 오늘, 여기에서 현존할 것이다.

출처: facebook Sungho Kim